오피니언 사내칼럼

“경제적 신냉전 심화…미·중 사이 직격탄 피하도록 국가적 전략 시급” [청론직설]

◆유일호 전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미중 패권 전쟁…美에 상응할 정도 세제 지원책 꺼내야

잠재성장률 저조 걱정…임기말이지만 노동개혁 꼭 필요

재정적자에도 일자리 효과 없어…규제 신설 신중해야

공시가격 급격 인상은 조세 저항 일으킬 구조 만든다

재건축 규제완화, 가격 들썩여도 길게 보고 밀고나가야


문재인 정부의 임기 종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경제적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고 글로벌 산업 패권 전쟁은 우리 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서울경제와 만나 “지금의 상황은 ‘경제적 신냉전(New Economic Cold War)’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외교와 경제를 망라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 패권 전쟁에서 견딜 힘을 키우기 위해 남은 임기에 노동 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며 “독일 경제를 부활시킨 하르츠 개혁은 우리에게 아직 유효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토교통부 장관도 역임한 유 전 부총리는 “수요 억제책만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절대 꾀할 수 없으므로 일시적으로 가격이 들썩여도 길게 보고 재건축 규제 완화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4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외생 변수가 영향을 줬지만 경제성장률 자체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물론 실질 성장률만을 전체 성과 지표로 삼는 것은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문제는 잠재성장률(인플레이션 등 부작용 없이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평가할 때 잠재성장률을 보는데 전문가들은 우리의 성장 잠재력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본다. 분명 걱정되는 부분이다.

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신냉전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외교와 경제를 망라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신냉전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외교와 경제를 망라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노동 개혁이 절박하다는 지적이 많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우리에게 아직도 유효하다. 현 정부 임기가 짧게 남았어도 반드시 해야 한다. 노동 유연성 없이는 성장 잠재력이 올라갈 수 없다. 노동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니 기업들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노동 개혁으로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 산업 패권 전쟁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노동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다. 기술뿐 아니라 생산성이 뒷받침돼야 산업 패권 전쟁 같은 외부 충격에 견딜 힘이 생긴다.

-규제 개혁이 절박한 상황인데 현 정부 들어서는 ‘기업 규제 3법’으로 족쇄를 더 채웠다.

△제일 심한 규제 생성 기관이 국회라고 말한다. 그곳에 있으면 미리 규제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리가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 신중해야 하는데 일이 터졌으니 규제를 신설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규제는 한 번 생기면 필요가 없어져도 계속 남게 된다. 규제 개혁은 없애는 것 이상으로 신설 여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성장률을 올리려 재정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바람에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데.

△코로나19 사태에서 재정으로라도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용 지출이 많았던 만큼 효과적이지 않았다. 대규모 적자를 감수했는데 효과를 못 봤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용의 질이다. 주로 단기 일자리를 양산했는데 60대 이상은 늘어난 반면 중요 축인 30~50대의 질 좋은 일자리는 줄었다. 일자리 정책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재정 적자를 통해서라도 부양을 하겠다면 반드시 생산성 있는 곳에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적자의 의미가 있는데 이런 점에 소홀했다. 댐·도로·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경우 재정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건설해놓으면 후대에 혜택이 돌아간다. 생산성 있는 곳에 투입하면 잠재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민간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특히 기업 부채는 경제 전체의 암초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걱정이 된다. 정부가 기업 부채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됐다.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 기업 부채였다. 한 곳에서 트리거(방아쇠)가 생겨 연쇄 작용한 것이다. 은행들이 회수에 나섰는데 기업들이 변제하지 못하고 은행 충당금 급증으로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까지 발생하는 끔찍한 사태였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상태는 아니다. 기업들이 구조 조정으로 부채비율을 많이 낮췄다. 하지만 지금처럼 빚이 늘어나는 것은 걱정해야 한다. 정부가 빚을 줄이도록 명령할 수는 없지만 환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또 산업 구조 조정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 평가에서 부동산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4·7 재보궐선거에 미친 영향도 가장 컸다. 부동산 정책 실패 이유가 뭔가.

△시장 현실에 대한 진단이 정확했는지 의문이고 정책 수단이 맞았는지도 회의적이다. 스무 번 넘는 수요 억제책으로 가격을 직접 통제하고 세금으로 안정시키려 했는데 잘못된 수단이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실패한 정책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투기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며 다주택자들을 잡는다고 가격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율형사립고 폐지 등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도리어 강남 수요를 키웠다. 유동성을 원인으로 꼽는다면 그 열기를 빼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조세정책과 동시에 공급 확대 정책을 폈다면 사람들은 차라리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조세 저항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는 것 아닌가.



△종합부동산세라는 독특한 세목으로 다스려보려다 한계가 오니 재산세까지 올렸다. 재산세는 지방세로서 장점이 많은 세금이지만 단점이라면 다른 세금과 달리 기준시가 추계에 의한 세금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 같은 층인데 집값이 다르기도 하고 층만 달라도 집값이 차이가 난다. 이것을 다 추산하려면 행정 비용이 엄청나다. 결국 전수조사를 못하고 표준지를 정해 측정한다. 오차를 막으려 실거래가에 못 미치는 표준가로 공시지가를 정하는데 우리처럼 집값 상승이 높은 나라는 공시가와 실거래가의 차이가 계속 벌어진다. 그래서 공시가격을 올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자가 보유율이 60%대로 국민 60% 이상은 재산세 상승의 부담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리는 것은 조세 저항을 일으킬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세금은 결국 국민 부담이므로 이를 급격히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불러온 결과를 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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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신냉전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외교와 경제를 망라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 다. /성형주 기자유일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적 신냉전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정치외교와 경제를 망라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 다. /성형주 기자


-재건축 완화론에 집값이 다시 들썩인다. 공급을 늘리면서 시장 불안도 막아야 하는 딜레마인데.

△서울시로서는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공급을 늘리는 것이 맞다. 정권 입장에서는 겁이 날 것이다. 재건축을 한다고 하면 일단은 가격이 올라간다. 건설이 완료돼 공급이 늘어난 뒤에야 집값이 안정된다. 그래서 재건축이 어렵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 수요 억제책만 이어간다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다. 일시적으로 가격이 들썩여도 재건축을 밀고 나가야 한다. 길게 봐야 한다.

-산업 패권 전쟁이 미국과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데.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제이컵 루가 ‘경제적 신냉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경제적 신냉전이라는 말이 제대로 와 닿는 시점이다. 많은 사람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간의 냉전이 좀 가라앉을 것으로 봤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못지않게 세게 나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제일 이득을 본 나라가 중국과 인도다. WTO 질서가 잘 이어지다가 미국이 생각을 바꾸니 새로운 패권 전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미국은 국가 운명을 걸고 싸우고 있다. 경제적 신냉전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경제적 신냉전이 우리에게 어떤 위기와 기회를 줄 것으로 보는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우리를 겨냥할 수도 있을 텐데.

△미국은 중요한 제조업을 몇 개 갖고 있다. 인텔 같은 반도체, 보잉 같은 항공 업체 등이다. 미국 제조업이 발전하면 우리에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 제조업의 어떤 부분이 강해질지 모르겠지만 기계·철강 같은 것은 한참 걸릴 것이고 당장은 큰 문제가 아니다. 외려 우리가 걱정할 부분은 신냉전 과정에서 미국이 중국과의 일부 거래 단절을 요구하고 자신들을 따르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중국과 거래하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가 꿋꿋하게 계속하겠다고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자칫 우리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경제적 신냉전이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 좋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냉전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정치외교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정밀한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외교적으로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한미 동맹을 우선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적 이익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해법을 잘 찾아야 한다. 경제문제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모두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로 공존하는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마음대로 못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잘 찾아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중국도 부품·소재 쪽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에도 우리의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패권 전쟁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자유무역 체제로 시장이 잘 작동할 때는 국가적 차원의 산업 전략이 우스운 얘기가 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필요하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국가적으로 제조업을 육성하면 우리 정부도 그에 상응할 정도로 민간에 세금 등의 지원책을 꺼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민간이 잘하는 부분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He is…

1955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한국조세연구원장을 거쳐 2008년 18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새누리당 정책위의장과 국토교통부 장관을 거쳐 2016년 초부터 1년 6개월가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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