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30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과세를 연기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면서 기획재정부가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기재부가 동학 개미의 입김에 밀려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조세 정책을 수정해야 했던 '대주주 논란'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최근 "암호화폐 세금의 공제 금액을 증액해주시고 과세 적용 기간을 더 미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26일 오후 5시 기준 약 4만7천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아직 암호화폐 관련 제도는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시점에서 과세부터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투자자 보호장치부터 마련한 후 세금을 징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관련 과세에 대해 (소득)5천만원 이상부터 과세하고, 주식과 같이 2023년부터 적용되는 걸로 기간을 연장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식과 가상자산에 차이를 두지 말고 똑같은 조세 혜택을 달라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부터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20%의 세율(지방세 별도)로 분리과세한다.
기본 공제금액은 250만원이다. 과세 시에는 1년간 여러 가상자산에서 낸 소득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매기는 손익통산을 적용하지만, 이월공제는 적용하지 않는다.
반면 주식의 경우 내후년인 2023년부터 과세가 시작되며, 기본 공제금액 5천만원이 넘는 소득에만 세금을 매긴다.
여기에 손익통산은 물론 이월공제도 5년간 적용해준다. 연간 기준으로 손실을 본 것이 있다면 이후 5년간 통산해 세금을 매기겠다는 의미다.
가상자산을 주식과 유사한 투자 자산으로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이를 과세 차별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구나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들까지 정부에서 다 보호할 수는 없다", "(가상자산은)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고 언급하며 '코인 민심'에는 더더욱 불이 붙었다.
가상자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세금만 떼어가려 한다는 반감이 커지면서 이날 현재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 인원은 13만명을 돌파했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시기는 이미 올해 10월에서 내년 1월로 한 차례 미뤄진 상태다.
기본 공제 금액(250만원)도 주식 외에 일반적인 다른 자산과 형평을 맞춘 것이기 때문에 가상자산에 추가로 혜택을 줄 이유는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기업 성장 및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주식 투자와 투기성이 강한 가상자산 투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청년층 표심을 의식한 여야는 이미 앞다퉈 대책 경쟁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상황 점검에 착수하는 한편 별도 특위 설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국민의힘 역시 가상자산 제도를 연구할 태스크포스(TF) 팀을 출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여당 일각에서는 가상자산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유예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논의 방향에 따라서는 실제로 정치권의 과세 연기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경우 기재부는 지난해 대주주 논란 당시처럼 여야의 협공 속에 고립될 수도 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해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결국 여론을 등에 업은 정치권에 밀려 현상 유지를 택한 바 있다.
주식 등 금융투자소득 공제 금액이 발표 당시 2천만원에서 최종 5천만원으로 상향된 데도 투자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종=우영탁 기자 ta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