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행정소송 재판부가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했다. 분식회계 여부를 놓고 삼성바이오와 금융 당국의 입장이 크게 다른 만큼 외부 전문가의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다. 이번 행정소송의 결과는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부 전문가인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이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가 관심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지난 3월 중순 정재욱 대전대 회계학과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결정했다. 행정3부는 삼성바이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 재판을 맡고 있다. 전문심리위원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사건을 심리할 경우 교수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불러 의견을 듣는 제도다. 서면이나 직접 재판에 출석해 쟁점 사항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다만 제시된 의견은 재판의 증거로 활용될 수 없고 참고자료 역할만 한다.
재판부는 1월 변론에서 이번 재판의 중요성을 감안해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법원이 전문심리위원 3명을 제안했고 삼성바이오와 증선위가 문제 삼지 않은 정 교수가 전문심리위원으로 선정됐다. 정 교수는 한국회계학회·대한회계학회 상임이사를 지낸 회계 전문가다. 최근 삼성바이오와 증선위는 각각 30쪽 분량의 질의서를 정 교수에게 전달했다. 정 교수는 관련 답변을 의견서 형태로 다음 달 19일까지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는 정 교수가 재판에 출석해 진술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심리위원은 재판장이 허가하면 법정에서 직접 의견을 낼 수 있고 소송 관계인들과의 질의응답도 가능하다. 재판부는 정 교수의 의견서를 받아본 뒤 법정 출석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행정소송 재판부가 외부 전문가인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듣겠다고 나선 것은 삼성바이오와 금융 당국 양측의 주장만으로 ‘불법성’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행정소송의 결과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 형사소송과 삼성그룹 경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은 권고 사항이지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약 4조 5,000억 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봤다. 이에 2018년 11월 삼성바이오에 대표이사 및 담당 임원 해임 권고, 감사인 지정 3년, 시정 요구(재무제표 재작성), 과징금 80억 원 부과 등의 처분을 내렸고 삼성바이오는 재제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재판 초기(당시 재판장은 박성규 부장판사)인 2019년 1월 삼성바이오가 “법원 판단이 나올 때까지 행정처분 효력을 멈춰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했다. 당시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본안 소송에서 분식회계 판단 자체를 뒤집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이미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재판부는 올 1월 돌연 전문심리위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섰고 최근 정재욱 대전대 회계학과 교수를 전문심리위원으로 결정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심리만으로는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인 분식회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전문심리위원제도 도입에 대해 삼성바이오와 증선위가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점만 보더라도 양측 모두 유불리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공방이 치열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안에 따라 재판부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도 전문심리위원들의 판단이 판결에 일부분 반영된 바 있다. 해당 재판에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재판부 추천), 홍순탁 회계사(특검),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삼성) 등 3인으로 구성된 전문심리위원들은 삼성의 준법감시위 활동을 평가한 뒤 다수가 최종 보고서에서 이 부회장 측에 다소 불리한 내용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재판부 역시 삼성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서 이 부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이어졌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삼성바이오 입장에서는 전문심리위원의 입을 빌려 ‘고의적 분식회계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이끌어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재판부가 먼저 전문심리위원 도입을 제안한 만큼 정 교수의 의견이 이번 판결에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양측이 정 교수에게 보낸 질의서에는 삼성바이오는 ‘회계처리가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부합했다’는 내용, 증선위는 ‘K-IFRS에 위배됐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각각 질문 내용이 구성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이 부회장의 형사재판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바이오 관련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성바이오가 이번 행정소송에서 분식회계 의혹을 떨쳐낸다면 형사소송에서도 관련 판결이 증거로 쓰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한편 삼성바이오가 증선위의 1차 제재에 대해 제기한 소송은 1심에서 원고 측이 승소했고 증선위의 불복으로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 변론은 다음 달 26일 열린다.
/이진석 기자 ljs@sedaily.com,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