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과 탄소 중립 정책이 양립될 수 없는 ‘허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된다. 정부가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제로 상태에 이르게 하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권 초기부터 추진한 탈원전 정책이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배제하고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탄소 중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3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탄소 중립을 위해 에너지 전환 정책 전반의 치밀한 전략과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발제를 맡은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은 이산화탄소 감축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 적응 정책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어느 나라도 원전과 석탄을 동시에 줄이거나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위주로 전원을 구성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모두 전기화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석탄 등 화석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분도 모두 전기로 대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탈원전 상황에서 결국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로 모든 에너지를 대체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탈원전과 탄소 중립 하나만 선택해야지 두 가지 모두를 좇는 것은 허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있지만 300여 기의 원전을 증설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며 “우리가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과학과 정보뿐인데도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사실과 과학의 영역 바깥에서 결정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박 교수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 인해 가치가 급격히 잠식되는 좌초자산에 대한 우려도 내놓았다. 그는 “탄소 중립으로 석탄발전 자산이 좌초자산화되는 위험에 노출돼 있어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GENCO) 및 민간 석탄발전사가 좌초위험군 100대 발전사에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석탄발전소 예상 좌초자산 규모는 1,060억 달러로 좌초자산 분석 대상 34개국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죄초자산은 기존에는 경제성이 있어 투자가 이뤄졌으나 시장 환경 변화로 인해 가치가 하락하고 부채가 돼버리는 자산을 의미한다.
토론에 나선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전력 수요의 증가는 탄소 중립을 위한 ‘전원 믹스’ 구성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한다”며 “재생에너지 위주의 전원 구성이 심화될 경우 전력 공급의 안정성 확보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산업 전반의 악영향에 대한 점검 필요성도 제기했다. 그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의 역할이 축소되면 도시가스 공급의 전·후방 사업자들이 산업 기반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며 “정유 산업 등의 체질 개선을 통한 산업 유지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의 이산화탄소 축소는 목적이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수단”이라며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이른바 ‘RE100’은 과거식 전략으로, 이미 미국 등 선진국은 무탄소 에너지로 100% 조달을 목표로 한 ‘CF100’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RE100은 ‘목적과 수단’이 바뀐 셈”이라며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전기 수요가 2.5배 또는 최대 5배까지 증가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