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가

영세 코인거래소 200개, 곳곳 '폰지 지뢰밭'인데…정부는 뒷북 단속만

■거래소 돌려막기에 피해 우려

"투자금의 3배 수익 보장" 꼬드겨

4만명으로부터 1조7,000억 받아

"노후자금 다 날려" 고객들 하소연

9월 거래소 줄폐쇄땐 피해 눈덩이

정부는 대책 커녕 담당부처도 없어

/연합뉴스/연합뉴스




경찰이 4일 강제수사에 착수한 암호화폐 거래소 A사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를 한 곳이다. 폰지 사기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로 1920년대 미국에서 찰스 폰지가 벌인 사기 행각에서 유래됐다.






◇A거래소, 돌려막기 수법으로 영업=A사는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회원 1명당 최소 600만 원짜리 계좌 1개를 개설하도록 해 4만여 명으로부터 1조 7,000억 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수개월 내 계좌 1개당 투자금의 3배인 1,800만 원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다. 또 다른 회원을 유치할 경우 120만 원의 소개비를 지급했고 새 회원에게 받은 돈을 기존 회원에게 주는 ‘돌려막기’ 수법으로 투자자들의 믿음을 샀다.

특히 이들은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시중 거래소에서 유통되고 있는 암호화폐도 거래할 수 있다며 신뢰를 쌓은 뒤 수익금을 지급할 때는 자체적으로 만든 암호화폐를 지급하며 투자를 유도했다. 아직은 상장 전이지만 미리 사두면 향후 몇 배, 몇십 배 오를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꼬드겼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령자와 주부 등이 주로 이들의 타깃이 됐다.



피해자 모임 카페에는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말에 속아 큰돈을 투자했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한 피해자는 “어머니가 가짜 암호화폐에 빠져서 노후자금 수천만 원을 넣었다”며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거래소 계좌에 남아 있던 2,400억 원에 대해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정확한 거래소 수조차 파악 안 돼…사기 행위 만연 가능성=문제는 이처럼 폰지 사기를 벌이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한두 곳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현재 은행과 실명 인증 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곳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4곳뿐이다. 그 외에 몇 개의 거래소가 있는지 정부도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200개 이상으로 추정할 뿐이다. 최근 금융 당국은 주요 은행에 암호화폐 사업자 관리 현황을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며 총 거래소 개수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세 거래소에서 높은 수익률을 약속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고 거래소 운영자는 자신의 몫을 뒤로 빼돌리는 동시에 신규 투자자의 돈을 이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의 영업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사기 수법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의 다른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하나를 만들어 거래소에 뒷돈을 주고 상장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거래소는 뒷돈을 챙기고 암호화폐를 만든 사람은 상장 초기 높은 시세 차익을 거둔 뒤 빠지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새 암호화폐가 상장됐다고 투자를 하는 사람만 돈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9월 신고 기한, 투자자 피해 발화점 될 수도=더 큰 우려 요인은 오는 9월 이후다. 정부는 특정금융거래법에 따라 원화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는 사업자는 9월 24일까지 신고서를 제출하게 했다. 이날까지 신고서를 못 낸 거래소는 영업을 계속할 수 없다. 주된 신고 조건은 은행과의 실명 인증 계좌 제휴 여부인데 당국의 날 선 시선으로 제휴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이다. 이에 현재도 사기 행각을 벌이는 거래소 운영자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잠적하며 9월이 피해 속출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은행과 실명 인증 제휴는 못 맺더라도 건전하게 영업을 하는 거래소 역시 9월 24일 이후 문을 닫을 수 있어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블로그를 통해 여러 사이트를 타고가다 그나마 안전하다는 4대 거래소 외의 거래소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로부터 즉시 원화 출금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도 거래소 측의 설득에 넘어가 계속 그 거래소를 이용하며 돈을 더 넣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거래소 줄폐업 사태가 올 경우 일부 덩치가 큰 거래소를 제외하고 다른 거래소 이용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정부 역시 현재 관련 법이 없기 때문에 폐쇄 거래소에 투자금을 되돌려주라고 명령할 권한이 없다. 투자금을 잃은 사람이 거래소 운영자 개인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방법밖에 없는데 실질적 거래소 소유주가 따로 있을 수 있고 법적 절차에도 지난한 시간이 소요된다.

◇상황 악화하는데…정부는 특별 단속만=하지만 정부는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특별 단속만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암호화폐 시세조작, 거래소 관계자의 불공정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특금법 개정안,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의원입법으로 발의는 돼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성격을 금융 투자 상품으로 할지 등 정의에서부터 정부 내에서 결론이 안 나고 있기 때문에 논의가 시작도 안 되는 실정이다. 주무 부처가 어디인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의 뒷북 대응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직 관료 출신의 한 금융 업계 고위 관계자는 “2018년 암호화폐 대란이 있은 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더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이를 방치했다”며 “지난 3년간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 정도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김현상 기자 kim0123@sedaily.com


이태규 기자·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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