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이르면 다음 달 중 아파트 분양 원가의 공개 범위를 설계·도급·하도급 내역까지 대폭 확대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약으로 분양 원가 공개를 내걸었다. 시장에서는 원가 공개 확대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5일 SH에 따르면 오는 6월 중 SH가 분양하는 공공 아파트의 설계 내역서를 비롯해 도급·하도급 내역서가 추가로 공개된다. 설계 내역서와 도급 내역서의 경우 과거 준공 단지까지 포함한 최근 10년치를, 하도급 내역서는 앞으로 발주하는 공사의 계약 건부터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SH 관계자는 “분양 원가 공개 확대와 관련해 서울시와 협의 중이지만 설계·도급·하도급 내역까지 공개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며 “설계 내역서와 도급 내역서는 6월 말께 전산 시스템이 정비되면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SH는 현재 62개의 분양 원가 항목을 공개하고 있지만 여기에 설계·도급·하도급 내역서 등 세부 내역은 빠져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SH가 분양가를 부풀려 공공분양으로 14년간 3조 1,000억 원의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하며 세부 내역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해왔다. 이 같은 요구에도 SH는 공사비는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항목이라 공개될 경우 법인의 이익을 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공개를 거부해왔다.
하지만 지난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부동산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SH 아파트의 분양 원가 문제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오 시장은 물론 박영선 후보도 SH 아파트의 분양 원가 공개 내역 확대를 공약으로 삼자 SH도 설계·도급·하도급 내역서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관측이다.
시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분양 원가 공개 확대의 찬성 논리는 ‘원가 공개로 분양가가 낮아져 부동산 시장이 진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양가 통제 수단인 분양가상한제가 오히려 ‘로또 청약 광풍’을 일으키며 시장 과열을 부추긴 점을 고려하면 분양 원가 공개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분쟁만 키울 가능성이 큰 것이 현실이다.
특히 공공에서 시작된 분양 원가 공개 범위 확대 흐름이 민간으로 확산할 경우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분양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겠지만 공공 아파트 분양 원가를 가지고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도 낮추라는 압력이 가해지면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y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