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를 징계할 수 있도록 변호사윤리장전 및 변호사업무광고 규정을 개정하자 리걸 테크 기업의 영업이 사실 상 불가능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는 리걸 테크 기업이 법조 기득권에 발목이 잡혀 싹을 제대로 틔워보지도 못한 채 성장을 멈출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변협은 상임이사회를 열고 변호사 광고를 전면적으로 봉쇄하는 회칙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변호사는 네이버·구글에 광고·홍보를 의뢰하는 행위가 불가능해지고 홍보용으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것도 금지된다. 또한 네이버 지식인 등에 법률 답변을 다는 행위도 규정 위반이 된다. 이와 함께 개정안에는 법률플랫폼에서 유료 광고를 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개정된 규정은 약 3개월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효력이 발생한다.
특히 스타트업계에서는 제5조2항이 법률 정보를 제공하는 리걸 테크 기업들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제5조 제2항 제3호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을 통해 형량을 예측하고 변호사 견적 정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영업이 사실상 어려워 진다는 주장이다. 제3호는 변호사 등이 아닌 경우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의 처분·법원 판결 등의 결과 등의 예측을 표방하는 서비스를 취급·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해 AI 기반 판례 예측 서비스를 제공 중인 ‘로톡’ ‘법정문서’ ‘머니백’ 등이 사실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제4호는 변호사 등이 아님에도 변호사등의 수임료 내지 보수의 산정에 직접 관여하거나, 이에 대한 견적·비교·입찰 서비스 등을 취급·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에 따라 변호사의 견적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한 ‘로앤굿’ 등 스타트업은 규정 위반 소지가 발생한다. 로앤컴퍼니는 “지난 수년 간 변협은 공식 질의회신에서 로톡의 광고는 합법이며 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며 “그런데 하루아침에 로톡을 비롯한 플랫폼에서 광고를 하는 변호사들이 모두 징계대상이라 말을 바꿨다”고 강력 반발했다.
스타트업계에서는 개정안이 시행 될 경우 리걸 테크 기업에서 변호사의 탈퇴가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포한 날로부터 3개월 후면 개정안이 시행되는데 변협에서 리걸 테크 기업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면 ‘탈러쉬’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리걸 테크 기업이 정부도 아닌 예상하지도 못한 변협의 규제 리스크에 발목을 잡혔다"며 “해외의 경우 AI를 기반으로 정책·법률 데이터를 제공하는 ‘피스컬노트’는 매출 9,980만 달러를 기록하며, 2~3조원 기업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30여 곳에 달하는 국내 리걸 테크 기업은 대표적인 정보 비대칭 시장인 법률 시장에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영세한 변호사들에게는 기회로 작용해 꾸준히 성장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변협의 움직임이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현직 변호사는 "디지털화, 온라인화 되어가고 있는 법조 문화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변협이) 기존의 불법 사무장 브로커들은 방치한 채, 새로운 기회들만 차단하면서 결과적으로 청년 변호사들의 앞길만 막는 보수적인 정책만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플랫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로톡에서 갓 개업한 청년변호사들이 영업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아직 통과 사실이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런데 구글 네이버 광고까지 안되는거 알면, 스타트업 잡다가 영업이 어려운 변호사들의 자유만 침해하는거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고 전했다.
변호사협회와 리걸 테크 기업처럼 전통 산업과 신생 산업이 처음으로 갈등을 빚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는 강남언니, 바비톡 등 미용 성형 정보 앱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한편, 의사들에게 정보앱에서 탈퇴할 것을 권하는 공문을 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미용 성형 앱의 경우 하루 사용자수가 10만 명이 넘으면 의협 산하 의료광고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 대상이지만 바비톡, 강남언니 등은 이 기준을 넘지 않아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규정을 5만 명 이상으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 코로나19로 인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허용하자 닥터나우(구 배달약국)이 약 배달 서비스를 하자 대한약사협회는 약사 회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탈퇴할 것을 권해 역시 이슈가 됐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