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수치의 기둥





1997년 6월 초 홍콩 빅토리아공원에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에서 유혈 진압된 희생자들을 형상화한 높이 8m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조각상 기단에는 ‘톈안먼 학살’ ‘노인은 젊은이를 영원히 죽일 수 없다’ 등의 문구가 영어와 중국어로 새겨졌다.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시외트가 1989년 발생한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8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조각한 ‘수치의 기둥(Pillar of Shame)’이었다. 홍콩의 중국 반환(7월 1일)을 한 달가량 앞두고 두려움이 커지던 시기에 홍콩 시민사회가 추모 촛불 집회에 맞춰 들여왔다. 이 조각상은 이듬해 홍콩대 교정으로 옮겨졌다. 이후 ‘애국민주운동지원홍콩시민연합회(지련회)’가 해마다 이 조각상 세정식을 시작으로 6·4 추모 행사를 열었다.



갈시외트의 ‘수치의 기둥’은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1996년 유엔식량기구 정상 회의 기간 중 이탈리아 로마 오스티엔스공항 터미널에 처음 설치됐다. 세계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에 따른 기아로 숨진 희생자들을 묘사해 인류에 경고를 보냈다. 그 뒤 홍콩에 이어 멕시코와 브라질에도 등장했다. 1996년 브라질에서 토지개혁을 주장하던 19명의 농민 운동가 학살, 1997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45명의 비무장 원주민 학살을 각각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조각이 설치된 지역은 달랐지만 모양은 거의 같았다. 조각가는 “결코 재발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사건을 기억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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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련회가 톈안먼 시위 32주년을 앞두고 3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수치의 기둥’ 세정식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일당 독재 종식과 톈안먼 민주화 운동 재평가,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홍콩 당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4 추모 촛불 집회를 불허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콩 시민들이 민주화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는 등 민주주의는 더욱 위협 받고 있다. 중국이 경제력과 국방력을 키운 뒤 팽창주의 행태를 보이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흔들고 있다. 우리가 보편적 인권 문제에서는 소신을 갖고 할 말을 하는 나라임을 각인시켜야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들도 우리의 주권을 함부로 흔들지 못할 것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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