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골프채 시장이 연 2조 원가량인데 오랫동안 일제 등 외산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요즘 랭스필드는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30년 된 국산 1호 골프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다시 일으키겠습니다.”
국산 골프채의 자존심을 지켜온 양정무(60·사진) 랭스필드 회장은 5일 포천 회문팰리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15~25년 전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골프채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모두 철수했지만 랭스필드는 포기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전주대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신문사 광고국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1991년 랭스필드를 창업했다. 이후 동남아시아 등 40여 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회사를 키웠으나 2002년 과세 당국이 일부 유예하던 특별소비세를 일시에 부과하는 바람에 흑자 부도가 났다가 절치부심 끝에 2005년 재기했다.
그는 “태극 마크가 달린 랭스필드 골프채로 싱글을 놓친 적이 없다. 그만큼 품질이 일제보다 오히려 낫다고 자부한다”며 “오래된 랭스필드 중고채를 신제품으로 보상·교환해주는 것도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2019년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가 시작된 뒤 일제 등 외제 중고 골프채를 가져오면 가치를 평가해 랭스필드 신제품으로 교환해주는 것도 국산 품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양 회장은 “국내 골퍼들이 바가지를 쓰고 있는데도 외제 선호 현상이 여전해 안타깝다”며 “오죽했으면 국내 대기업들이 일제히 골프채 시장에서 문을 닫았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삼성(아스트라), 코오롱(엘로드), LG(반도스포츠), 동성화학(팬텀) 등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 골프채 시장에 도전했다가 철수했다.
그는 “일제 등 외산 골프채만 찾는 세태가 못마땅해 국산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면서 “현재 초중급형 위주에서 상급자용 단조 아이언과 젊은이와 초급자를 위한 실속형 풀세트를 조만간 출시해 국내뿐 아니라 수출 틈새시장도 적극 개척하겠다”며 부활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그는 창업 이후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해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는 물론 동남아 등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아 수출 실적이 연 100만 세트에 달하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신지식인 2호’에 선정된 것도 골프채 불모지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기술벤처·수출유망 기업으로 각광받다가 세무 당국과 심하게 다투는 일이 발생해 결국 당국의 간부들이 옷을 벗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후 골프채에 붙던 특별소비세(76%) 중 일부 유예받고 있던 부분을 한꺼번에 내라는 독촉에 당시 1,000개 이상의 거래처 중 외상 매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흑자 부도가 났다”고 털어놓았다. 일제가 판치던 시장에서 우여곡절을 뚫고 적잖게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두던 건실한 벤처기업을 불합리한 세무 행정이 망가뜨린 셈이다.
양 회장은 “당시 서울 강남 요지의 3,300㎡ 부지의 사옥도 날리고 미국 하와이로 떠나 1년 반 골프를 가르치며 칩거했다”며 “다행히 현지인들한테 랭스필드가 좋다고 입소문이 나 60만 달러를 벌어 한국으로 송금했는데 오히려 돈을 빼돌렸다는 오해를 받아 귀국 후 검찰 수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시련을 거쳐 오뚝이처럼 재기한 그는 “아무리 시련이 닥쳐도 대한민국 대표 골프채 브랜드로 부활하겠다”며 “회사 안에 지난 수십 년간 고조선 유물을 모아 ‘고조선역사박물관’을 세우고 대륙을 경영했던 선조들의 기상을 매일 되새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실제 포천 회문팰리스 내 고조선역사박물관을 들어가보니 역대 단군들의 영정을 모시고 각종 고조선 희귀 유물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고대사 전문가 50여 명과 배달겨레역사재단을 만들었다”며 “경제·문화적으로 민족 정기를 일깨우는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피력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