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4주년을 맞는다. 이제 남은 기간은 딱 1년이다. 등산으로 치면 하산의 막바지 부분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경제 정책에 대해 ‘잘못한다’는 부정 평가가 60%에 달했다. 반면 ‘잘한다’는 긍정 평가는 22%에 머물렀다. 2017년 8월 출범 초기(54% 대 17%)에 비해 긍정·부정 평가가 역전됐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는 9%로 가장 낮았으며 고용·노동 분야도 긍정 평가가 27%에 불과했다. 그나마 복지 정책에 대한 긍정 평가가 48%로 가장 높았지만 따지고 보면 막대한 세금을 흥청망청 쏟아부은 결과일 뿐이다. 국민이 경제 정책 전반에 걸쳐 낙제점을 매긴 것이다. 늘 그렇듯 문제는 경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의 취임사에서 국민에게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어렵고 민생도 어렵다면서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선언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집권 4년을 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현 정부의 경제 정책 간판은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이었다. 임금이 늘어나야 경제가 좋아진다며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인상하고 근로 시간도 단축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쏟아지는 실험성 정책은 국민과 기업을 ‘카오스(혼돈)’ 상태로 몰아넣었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 약자들만 더 힘들어졌을 뿐이다. 이 정부 들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 일자리가 200만 개 가까이 사라졌고 만성적인 ‘취업 포기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다. 세금 일자리로 분식한 고용 통계를 들이대며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 정부는 계층·세대 간 갈등을 없애겠다고 부르짖었지만 사회 전 부문에 걸쳐 격차만 키웠을 뿐이다. 경제 약자를 돕겠다던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오히려 고용 절벽과 소득 양극화를 부추겼다. 국민은 이 정부 들어 급격히 늘어난 2,000조 원의 국가 부채를 떠안게 됐다. 재벌 개혁을 앞세운 기업 정책은 ‘규제 3법’ 등 기업 옥죄기로 이어져 결국 일자리 감소와 경제 활력 감퇴를 초래하고 말았다. 일부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과보호는 고용 유연성을 떨어뜨려 신규 채용 자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산업 현장에서는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자동차 생산 라인이 멈춰서고 선적할 배를 구하지 못해 아예 수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나라 안팎의 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제라도 잘못된 경제 정책만큼은 바로잡아 나라를 정상 궤도에 올려놔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노동시장 유연화로 위기 상황을 극복해냈다. 당시 구조 개혁을 주도했던 페터 하르츠 전 독일 노동개혁위원장은 몇 년 전 한국을 찾아 “독일 노동 개혁의 성공 비결은 정부의 빠른 결단과 추진력이었다”며 “정권은 유권자를 잃는 것도 감내하겠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임기 1년을 남긴 문 대통령이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모름지기 정치 지도자라면 미래를 내다보면서 인기가 없더라도 진정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해야 한다. 지지층으로부터 욕을 먹고 정권마저 빼앗기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총체적 위기일수록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역사를 내다보며 ‘큰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싸우는 정부’에서 벗어나 시장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펼쳐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식어가는 성장 엔진도 되살릴 수 있다. 하루라도 시장에 나가 삶의 현장을 속속들이 본다면 꽉 막힌 현실을 풀어나갈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