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술 ‘I-Cube4’를 선보이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의 경쟁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전자의 경쟁사이자 파운드리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가 그간 독자적인 패키지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여왔던 만큼 앞으로 두 회사는 반도체 패키지 분야에서 진검 승부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로직 칩과 4개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구현한 2.5차원 패키지 기술 I-Cube4를 개발했다고 6일 밝혔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삼성전자는 빠르게 커가는 고성능 컴퓨팅 분야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클라우드서비스 등 고대역폭 데이터 전송과 고성능 시스템반도체가 필수적인 고객사의 수요에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I-Cube4는 가운데에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두고 좌우에 HBM 칩이 배치되는 구조다.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배치해 전송 속도를 높이면서도 칩들이 차지하는 면적은 크게 줄인 것이 특장점이다. 모바일이나 서버 등에 칩을 탑재할 때 무한정 옆으로 쌓아 붙일 수 없는 한계를 집적 기술을 통해 극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인쇄회로기판(PCB)과 칩 사이에 실리콘 인터포저를 넣어 회로 폭의 차이를 완충하고 초미세 배선이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했다. 머리카락보다 살짝 두꺼운 100마이크로미터(μ) 수준의 인터포저가 패키지 내부에서 변형되지 않도록 하고 패키지 내부의 열을 효율적으로 방출하는 구조를 찾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축적해온 반도체 공정의 노하우가 십분 활용됐다는 후문이다. 또한 패키지 공정 중간 단계에서 동작 테스트를 진행해 불량을 사전에 걸러내고 전체 공정 단계를 줄여 생산기간을 단축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강문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마켓전략팀 전무는 “고성능 컴퓨팅 분야를 중심으로 차세대 패키지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 2018년에 선보인 ‘I-Cube2’ 양산 경험과 차별화된 ‘I-Cube4’ 상용화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HBM을 6개, 8개 탑재하는 신기술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10년대 초반 스마트폰 산업의 성장과 함께 그 가치를 조명받은 반도체 패키지 사업은 최근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의 개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장이 팽창하고 있다. 증권가에 따르면 반도체 패키지를 포함한 후공정 산업은 오는 2025년 90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러 종류의 반도체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애플워치와 같은 혁신 제품들의 탄생도 잇따르고 있다.
이처럼 삼성전자가 반도체 패키지 기술에 공을 들이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 때문이다. 과거 수십년간 반도체 업체들은 공정 미세화 등을 통해 집적회로의 성능을 높이는 데 주로 힘을 쏟아왔다. 2년마다 반도체의 집적도는 2배가 된다고 설명해 업계 안팎의 관심을 받은 ‘무어의 법칙’도 칩을 더 작게 만들거나 더 큰 웨이퍼에 더 많은 회로를 새길 수 있는 기술, 즉 전공정에 초점을 맞춘 연구개발(R&D)을 중시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데이터의 단순 구축과 처리보다 다양한 데이터의 활용 역량이 중요해진 현재로서는 후공정, 즉 패키지 기술을 통해 가격과 성능·안전성 등을 모두 충족하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여기에 7나노미터(nm) 이하 초미세 공정을 다룰 수 있는 업체가 삼성전자·TSMC·인텔 등 극소수에 그치면서 반도체 성능의 ‘한끝 차이’를 가늠하는 패키지 기술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이를 반영하듯 글로벌 패키지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0년 400억 달러에 그쳤던 이 시장은 2025년 90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역시 갈수록 다양해지는 고객사 주문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패키지 기술의 고도화에 역점을 둘 예정이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과 2020년 연거푸 패키지 사업을 맡고 있는 온양사업장을 찾아 차세대 반도체 후공정 기술 개발 로드맵을 점검한 것도 이러한 산업적 맥락을 반영했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한편 2018년 로직과 2개의 HBM을 집적한 ‘I-Cube2’를 개발하고 바이두의 AI 칩 ‘쿤룬(KUNLUN)’에 적용해 양산 경험을 쌓은 삼성전자는 빠르면 올 하반기 6개의 HBM을 쌓은 ‘I-Cube6’에 대한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