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특허 면제에 대한 세계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보조를 다시 맞추던 독일은 어렵사리 개발한 백신 제조 신기술이 적국에 유출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일찌감치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벗어나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백신 외교’를 벌여온 중국은 미국에 외교 주도권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허 면제까지 가장 큰 걸림돌은 제약사의 반발일 것이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국제사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신기술 가진 獨 “특허=혁신 원천”
바이든 대통령의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 선언에 앙겔라 메르켈(사진) 총리가 이끄는 독일은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가장 먼저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6일(현지 시간) 독일 정부 대변인은 “지재권 보호는 혁신의 원천이므로 미래에도 유지돼야 한다”며 “현재 백신 공급의 방해 요소는 특허가 아니라 생산 능력과 품질 기준”이라고 밝혔다. 백신 지재권 면제에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진 영국과 스위스가 “세계무역기구(WTO)와 관련 논의를 진행해왔다” “특허 면제에 회의적이지만 논의의 여지는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인 것과 달리 독일 정부는 반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독일이 확실한 입장을 표명한 데는 자국 제약사의 신기술인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이 중국과 러시아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에 이어 독일 제약사 큐어백은 mRNA형 백신 출시를 앞두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 3상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유럽연합(EU)은 이달 내로 백신 사용 승인 심사에 착수한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각각 영하 70도와 영하 20도에서 보관돼야 하는 것과 달리 큐어백 백신은 일반 냉장고는 물론 영상 5도에서도 약 3개월간 관리될 수 있어 유통에 용이하다. 독일로서는 쉽게 공개하기 싫은 기술인 것이다. 실제 화이자와 모더나도 백악관에 mRNA 기술이 중국과 러시아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미국과 강하게 충돌했던 러시아가 지재권 면제를 지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백신이 세계 곳곳에서 사용될 때 비로소 안전해질 수 있다”며 자국산 백신의 지재권 면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자국산 백신 기술을 공개해도 mRNA 기술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러시아에는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中, ‘백신외교’ 주도권 뺏길까 걱정
중국은 백신 지재권 면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뒤늦은 미국의 특허 면제 지지에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6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백신산업협회장을 인용해 “미국은 개도국이 백신을 필요로 할 때 외면했다”면서 “백신 지재권 포기는 엉망이 된 미국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술책에 가깝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백신 외교’의 주도권을 잃을까 우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3월까지 네팔·파키스탄·레바논 등 53개 저소득 국가에 자국산 백신을 기부했다. 미국이 지난달 말에야 인도에 처음으로 백신을 지원한 것과 대조적이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전방위에서 압박하는 가운데 백신 외교로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던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지재권 면제 지지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질 수 있다.
피해 심한 브라질은 생산 느려질까 우려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브라질은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지재권 면제로 세계 곳곳에서 백신 생산이 가능해지면 원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져 공급이 오히려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ABC방송에 따르면 마르셀로 케이로가 브라질 보건장관은 “백신 지재권 면제는 제약사와 백신 공급 계약을 맺었던 브라질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라질은 3월 화이자와 백신 1억 회분 구매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1억 회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