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대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컵의 바닥을 유심히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바닥에는 컵이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가 표시돼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로 만듭니다. 우리가 쉽게 페트(PET)라고 부르는 그 재질입니다. 그런데 일부는 PET가 아닌 폴리스티렌(PS)이나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들어진 컵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썩는 플라스틱이라고 알려진 폴리라틱에시드(PLA)로 만든 컵도 적지 않습니다.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재활용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재질들이 섞여 있거나 컵 안에 남겨진 음료 등 내용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재활용의 불편함과 귀찮음, 번거로움에 착안해 1회용 플라스틱 컵을 분리수거하는 기계를 만들고 있는 소셜벤처가 있습니다.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청년 창업가 이노버스의 장진혁 대표를 친환경 뉴스레터 <지구용>이 만나고 왔습니다.
일회용컵 분리 수거하는 쓰샘
이노버스는 엄청난 수상 이력을 자랑하는 소셜 벤처입니다. 2019년 이후 여러 공모전에 참여해 15번이나 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선정하는 ‘환경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서 지원 기업에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청년 기업입니다. 이노버스는 사물인터넷(IoT) 기능이 탑재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 분리 배출기인 ‘쓰샘’으로 이 상을 받았죠. 쓰샘은 플라스틱 컵을 버릴 때 내용물을 버리고 내용물이 남지 않도록 헹구고, 분리 배출하는 일을 한 곳에서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품입니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획기적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죠. 이노버스는 여기에 ‘사물인터넷(IoT)’ 기능을 넣었습니다. 수거함에 컵이 어느 정도 차게 되면 자동으로 알려줘서 사람이 직접 수거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가득 차기 전에 수거하게 되면 쓰레기통이 컵으로 넘쳐나거나 버릴 곳이 없어서 쓰레기통 주변에 컵을 탑처럼 쌓아 둘 일을 없겠죠.
이노버스는 현재 이 쓰샘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서 컵을 뚜껑과 분리해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재활용 가능한 재질의 컵과 그렇지 않은 컵을 분리해서 버려주는 기능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생긴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라고 하더라도 페트 재질의 컵은 재활용할 수 있지만 다른 재질의 컵들은 재활용이 잘 되지 않습니다. 특히 페트나 PP, PS 컵이 한데 섞여 있으면 재활용이 불가능합니다. 장 대표도 “분리수거되는 플라스틱 컵을 보면 95%가 PET로 돼 있어요. 폴리프로필렌(PP)이나 폴리라틱에시드(PLA) 등은 5% 정도인데 이 컵들이 PET 컵과 섞여 배출되면 재활용이 불가능해요. 사람들이 직접 골라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죠. 그래서 버릴 때부터 PET만 따로 모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컵 재질따라 자동 분류하는 업그레이드 쓰샘 내달 말 출시
새로운 ‘쓰샘’은 컴퓨터가 버려진 컵의 바닥에 쓰여있는 재질 표시를 읽어서 분류하게 됩니다. 그런데 컵 아래 부분의 재질 표시는 사람 눈으로 봐도 잘 안보입니다. 이리저리 컵을 뉘였다가 세웠다가 눈과의 각도를 바꿔보면 어느 순간 잘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컴퓨터 카메라도 사람 눈과 같아서 이 표식을 잘 인식 못하기도 한답니다. 이노버스는 컵의 바닥 면과 카메라의 이상적인 각도, 빛의 양 등을 실험을 통해 찾아내고 쓰샘에 적용시켜서 PET 재질의 컵을 100%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장 대표는 최근 컴퓨터 카메라가 이 표시를 읽을 수 있는 최적의 각도와 빛의 양 등 이상적인 조건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일단 50개 정도의 전혀 다른 일회용 컵을 모아서 실험을 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제 찾아낸 조건을 바탕으로 더 많은 데이터가 쌓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장 대표는 얘기했습니다. 장 대표는 “100% 분류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죠. PET가 분류되는 함에 다른 재질의 컵이 하나라도 섞여 들어가면 모아 놓은 PET가 전부 쓰레기가 돼요. 그렇게 안하려고 출시도 미루고 있어요"라고 알려줬습니다. 계획대로라면 내달 말, 늦어도 7월 초에는 새로운 쓰샘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개발이 완료되면 학교나 공공기관, 대기업 등 플라스틱 컵 배출이 많은 곳에 쓰샘을 설치했으면 한다고 합니다. 이미 SK텔레콤 등 대기업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이전 버전의 쓰샘은 부산항만공사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기도 하구요.
쓰샘을 통해 분리 수거된 PET 플라스틱 컵은 리사이클이나 업사이클 업체에 보내 재활용됩니다. 지금은 부산에 있는 우시산이라는 사회적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그곳에 페트 컵을 보낸다고 합니다. 우시산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침구나 인형 우산 등 패션 소품을 만드는 꽤 유명한 업사이클링 사회적 기업입니다.
“제대로 버릴 환경 만드는 게 중요”
장 대표는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계를 고안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건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장 대표가 친환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18년 쯤 부친과 같이 플라스틱의 날 관련 행사에서 ‘10년 안에 대한민국이 쓰레기로 뒤덮힐 것’이란 말을 듣고 나서라고 합니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가 그 말을 증명해주기에 느꼈던 위기감이 더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 대표는 그 주범 중 하나가 일회용 컵이라고 생각했답니다. 학교에서 시험 공부할 때 도서관 쓰레기통 주변에 쌓여있던 일회용 컵을 보고서 “왜 제대로 버리지 않는가라는 생각보다는 잘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컵 버리려고 화장실 가서 내용물 버리고, 다시 씻고 쓰레기통으로 이동해서 버리지는 않자나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사람들도 제대로 버릴 거라는 거죠.
“전 한번도 재수도, 휴학도 하지 않았어요. 빨리 졸업했죠. 그러니까 적어도 2년 정도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해볼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많이 다른 길이긴 하지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창업이라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잡다한 실무는 귀찮을 정도로 많고 누군가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자신의 인생도 걸려 있고요. 다행스러운 건 일찍 졸업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의 여유가 있었고, 대학생 때 참가했던 경진대회 등에서 받은 상금이 있어서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은 대학 시절 경진대회 때부터 같이 했는데 사실 같이 하자고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외부에서 인정받고 성과를 내면서 이제는 이 일에 대한 믿음이 너무 확고해졌답니다.
“쓰샘의 해외 진출이 꿈”
이노버스는 상명대 캠퍼스타운사업단이 조성한 창업발전소 2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내부 공간은 넓지 않았습니다. 이노버스와 함께 또 다른 청년 벤처 기업이 함께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말미에 사무실 벽면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이런 글이 눈에 확 보였습니다. ‘1억 달성시 제주도 단체 휴가, 3억 달성 시 휴가 2일+에어팟+30만원...15억 달성 시 휴가 5일+상여금 300%’. 장 대표는 인센티브라고 설명해줬습니다. 가상자산으로 하루에 몇 억원씩 벌었다는 ‘영웅담’에 비하면 소박하기까지 한 인센티브 정책이지만 이노버스의 열정을 엿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애초 이노버스의 사업 모델은 쓰샘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었지만 앞으로는 렌탈을 하고 이를 관리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1,600만~1,700만원 정도의 매출이 나왔답니다. 하지만 사실상 쓰샘 다섯번째 버전이 나오는 올해가 사업의 시작 년도라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친환경과 관련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계속 제품을 발전시키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진출도 해서 모범 사례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팀지구용 use4u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