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4.2% 급등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준 12일(현지 시간), 미국 증시는 줄줄이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나스닥은 2.67% 급락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2.14%,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도 1.99% 떨어졌는데요.
이날 리처드 클라리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조차 인플레이션 지표를 보고 “놀랐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인플레이션은 향후 통화정책을 비롯해 증시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인데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조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충격적인 4월 CPI에 대한 월가의 반응과 전망을 전해드립니다.
2008년 이후 최고치에 월가도 충격…그래도 “일시적” 주장
월가는 이날 CPI 수치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시장의 예측치가 3.6%(전년 대비 기준)였는데 실제로는 4.2%가 나왔기 때문이죠. 2008년 이후 최고치였습니다. 에너지 같은 변동성이 큰 것을 뺀 근원 CPI도 3.0%나 올랐습니다. 연준의 기준은 2%를 크게 웃도는 것이죠.
월가의 1차적인 반응은 예상보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대체로 이것이 일시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캐서린 키팅 BNY 멜론 웰스 매니지먼트의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TV에 “투자자들은 항상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제를 재개장하면서 나온 (일회적) 서프라이즈”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지난달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끝낸 뒤 차를 렌트하고 비즈니스 여행을 했고 비행기를 탔으며 레스토랑에 갔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기저효과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죠.
실제 가격상승 항목을 뜯어보면 이런 측면이 있는데요. 스포츠 경기가 10.1% 올랐고 비행기표 10.2%, 호텔방 8.8% 등 경제활동 재개에 영향을 받는 업종 위주로 상승폭이 컸습니다. 중고차(10%)와 컴퓨터(5.1%)도 많이 올랐는데 이들은 반도체 공급난 같은 공급문제에 영향을 받고 있죠.
로젠버그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이들 항목은 미국 전체 경제의 7%가량을 차지한다”며 “나머지 93%는 0.3% 오르면서 기대에 부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장에서는 4월 CPI가 중요하지만 이것도 고용보고서처럼 여러 데이터 가운데 하나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마이클 피어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CPI 수치가 ‘인플레는 대부분 일시적’이라는 연준의 생각을 바꿀지 의문"이라며 “연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임시적인 요인들이 있다는 것 정도”라고 했습니다.
“연준, 고용이 더 중요 더 많은 데이터 필요해” vs 국채금리 상승 증시도 더 예민해져
실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이날 CPI 수치에 놀랐음에도 통화정책을 당분간 바꿀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클라리다 부의장은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연설에서 “지금은 특히 고용시장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지금까지 연준이 제기해 온 금리인상을 위한 두 가지 전제조건, 즉 완전고용 복귀와 평균 2% 물가상승 가운데 고용에 대한 비중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는 물가상승이 일시적이라는 판단 아래 가능한 것이지만 이날 CPI 지표를 보고도 이같은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의 추세를 확인하려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는데요.
시장에서는 연준이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에는 느긋하다는 해석도 내놓습니다. 디플레이션 공포에 비하면 물가상승이 낫고 경기가 좋아진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시장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날 오전 연 1.65%대였던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오후 들어 1.7%를 돌파했습니다. 증시가 2% 안팎 급락한 것도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아트 캐신은 “연준이 핵심을 놓쳤을 수 있으며 이들이 이를 따라잡으려고 할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연준이 신은 아니라는 말이죠.
당장 전문가들의 4월 CPI 예측이 빗나갔다는 점은 앞으로도 물가 관련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이 있고 증시는 이를 선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투자자금이 이동하고 기업의 수익률이 떨어져 주가하락요인이 되는데요.
또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것 아니냐고 우려하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금리인상 문제가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주식시장의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시장에 긍정적인 그림은 아니”라며 “투자자들의 증시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저효과 가늠할 7~8월이 기로…기대 인플레 영향 주목해야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인플레이션 영향이 얼마나 더 갈지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1차 분기점이 여름인 7~8월인데요.
여름이 중요한 이유는 기저효과를 어느 정도 배제하고 물가상승 추세를 알아볼 수 있어서입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셧다운(폐쇄) 이후 3~4월에는 물가가 하락했는데요. 이후 여름부터 미국이 다시 경제 재개를 시작하면서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7~8월 이후에도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하면 “어, 물가가 계속 오르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 앞서 많은 이들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고 설명해드렸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블랙록의 릭 리더 채권분야 최고투자책임자(CIO)는 “5년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이 반영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2.8%”라며 “이는 연준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돈다”고 지적했는데요.
결국 관건은 기대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미 가계는 고기와 채소 같은 먹거리부터 휘발유까지 모든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있고 공급난을 겪고 있는 기업도 앞으로는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예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같은 기대 인플레이션에 가격이 더 오르게 되는데요.
특히 조 바이든 정부가 총 4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상승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확신이 더 굳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내년 물가상승률은 3.4%로 연준의 목표치를 크게 넘어서는 것으로 나옵니다. 손성원 SS이코노믹스 대표 겸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의 핵심은 인플레이션 기대”라며 “지금까지 몇 조 달러 수준의 경기부양책에 또 몇 조 달러의 정부 지출이 올 것이며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점쳤습니다.
CNBC는 “서플라이체인 이슈와 생산차질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최근의 물가상승에 대한 논의가 소비자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는지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최근의 임금 인상발 인플레이션 우려도 한몫합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와중에서도 식당의 음식값은 떨어지지 않았고 올 들어 구인난에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를 더 크게 밀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죠. 손성원 교수는 “구인난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CPI의 최소 3분의 2를 차지하는 인건비는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 기대로 이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