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스크 의무 착용이 대폭 완화된 것을 놓고 새로운 지침 발표가 갑작스러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로셸 월렌스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에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지침에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언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느냐고 추궁할 때 월렌스키 국장은 국민 3분의 1만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지역사회 감염이 계속돼 마스크와 거리두기 등의 공중보건 조치가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인 13일 월렌스키 국장은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 실내외 대부분에서 마스크를 벗고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14개월간 이어진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사투에서 가장 중대한 이정표로 평가될 새 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5명의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와 전문가 등을 취재, '잘못 다뤄진 옳은 결정'이라는 제목으로 발표 내막을 밝혔다. WP에 따르면 월렌스키 국장은 상원 청문회 전날인 10일 밤 이미 마스크 착용을 대폭 완화하는 새 지침을 결정했다. 그러나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코로나19 조정관에게는 이틀 뒤이자 발표 전날인 12일 저녁 6시에 알려줬다. 백악관 참모들에게 전달된 건 오후 9시께였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발표 당일 아침에 보고를 받았다.
당일 오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급히 잡혔고 연설문을 마련하느라 참모들이 바빠졌다. 백악관에서는 이런 중대한 결정을 직전에야 알려준 데 대한 불만이 나왔다. 중대 발표인 만큼 국민들이 궁금해할 내용이 많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데 CDC가 아무 낌새도 보이지 않다가 발표 전날 저녁에야 알려줬다는 것이다.
CDC가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손을 뗀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이 백악관으로서는 소통 부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을 불러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는 CDC의 결정에 관여를 시도해 여러 차례 외압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바이든 비판세력은 발표 타이밍에 주목한다. 송유관 해킹 사태로 국민들이 주유소에 길게 줄을 서고 이스라엘에서는 충돌이 격화하고 인플레이션 공포로 시장이 어수선할 때 갑작스럽게 바이든 대통령이 득을 볼 수 있는 발표가 나왔다는 주장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월렌스키 국장은 일요일인 16일 ABC·NBC·CNN·폭스뉴스 등 4개 방송 인터뷰에 연달아 응했다. 그는 지난 2주간 백신 접종 및 확진 감소 등에 따른 과학적 데이터의 진전이 있었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침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렌스키 국장은 "정보가 가능해졌을 때 가능한 한 빨리 발표한 것"이라면서 정치적 외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마스크 착용을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정직한 것"이라며 백신을 맞지 않고 마스크도 쓰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스크 착용 대폭 완화는 15일 방송된 미국의 유명 코미디쇼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의 풍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으로 분장한 배우가 "'이게 무슨 뜻이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거 함정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상황극을 보여줬다. 또 술집과 항공기 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두고 벌어지는 혼선을 노출하며 당국의 갑작스러운 발표를 풍자했다.
/박예나 인턴기자 ye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