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예적금 금리 하락은 최근의 대출금리 상승세와 정반대 현상이다. 1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현재 은행의 가계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2.73%로 전월보다 0.07%포인트 올랐다. 2019년 6월(2.74%)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신용대출 역시 3.70%를 기록하며 지난해 2월(3.70%) 이후 1년 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반면 예적금 금리는 장단기 상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상품에서 하락하고 있다. 신규 가입액 기준 만기 1년 정기예금 금리는 3월 0.94%로 지난해 12월 1.02%에서 미끄러졌다. 만기 3년 이상~4년 미만 정기예금도 같은 기간 1.29%에서 1.10%로 하락했다. 만기 3~4년짜리 정기적금 역시 3월 1.31%로 역대 가장 낮은 2월과 동률을 이뤘다. 통계는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지방은행,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특수은행을 토대로 작성됐다.
예적금 금리 하락은 그나마 높은 금리를 줘 은퇴자들의 기댈 언덕이었던 저축은행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은 통계를 보면 3월 저축은행의 만기 1년 정기예금 금리는 1.75%로 전월에 비해 0.12%포인트 미끄러졌다. 수치는 지난해 8월 1.67%로 사상 최저를 기록한 후 지난해 12월 2.04%까지 올랐지만 다시 3개월 연속 내리며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대출금리는 오르는데 예적금 금리는 반대로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출금리와 달리 뚜렷한 산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대출과 예적금 금리 안내문을 보면 대출은 은행채 금리나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와 연동된다고 돼 있지만 예적금은 산출 식이 없다. 그렇다 보니 은행의 금리 산정 관련 정책적 판단도 가미되며 금리 상승기에 대출금리보다 늦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은행이 예적금 등 수신 잔액이 부족하면 금리를 올려 돈을 빨아들이겠지만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으로 예금주가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 잔액이 워낙 많다 보니 급한 상황도 아니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요구불예금 잔액이 풍부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요구하는 예대율도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굳이 예적금 상품 판매를 강화할 이유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은행은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금 잔액을 뜻하는 예대율을 일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예적금 잔액이 줄어도 요구불예금이 뒷받침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저축은행도 예금이 밀려들어와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낮은 상황이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2018년 11월에 저축은행들이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해 관련된 예적금이 들어오고 있고 2019년부터는 저축은행도 모바일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그쪽 통로에서도 예적금이 유입돼 금리를 올릴 필요성은 낮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재테크를 하려는 사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은퇴자의 경우 퇴직금 등의 목돈을 굴릴 곳이 마땅하지 않은 상황이다. 부동산 투자를 하자니 각종 규제로 길이 막혀 있고 결국 주식이나 암호화폐 시장에 기웃거리지만 손실 우려가 높아 이 역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