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종종 과거에서 실마리를 찾곤 한다. 개인이나 기업, 나아가 국가도 다르지 않다. 지나온 역사에서 빛을 발한 선현의 정신과 지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교훈을 남기고, 울림을 준다.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이 어지럽고 위태로운 시기, 조선시대 최고의 업적을 남긴 성군 세종대왕과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충신이었던 정약용의 사상을 다룬 책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세종의 국가 경영 원칙을 다룬 책 ‘세종의 원칙’과 관리의 도리를 논한 다산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를 오늘날의 시선에서 재해석한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다.
신간 ‘세종의 원칙’을 펴낸 인문학자 박영규는 오늘날 600년 전 임금인 세종을 다시 살펴야 하는 이유로 “지금으로 치면 세종은 대표적인 융·복합형 지식인이자 리더”임을 강조하며 리더로서 “전인적 존재에 가까운” 세종에게 길을 묻고 싶었다고 한다.
책은 세종이 고수했던 여러 국정 철학의 원칙들을 재조명한다. 세종은 ‘백성에 이익이 되고 쓸모가 있느냐’는 실용주의를 국정 운영의 제1 원칙으로 내세웠으며, 신하들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가 대사를 결정하는 ‘숙의민주주의’를 구사했다. 외교에 있어서는 강대국에게 예를 갖춰 머리를 숙이되 철저하게 그에 상응하는 실리를 챙겼으며, 국가 영토가 걸린 문제에서는 촌척도 양보하지 않았다. 가장 큰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보여준 애민정신, 반대론자와도 토론을 서슴지 않으며 무례에 대해서만 처벌을 가했던 세종의 소통 원칙 등도 책은 보여준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쓴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는 정약용의 대표 저서인 목민심서 내용을 시대에 맞춘 해설과 함께 소개한 책이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이 부임 후 자리를 떠날 때까지 지켜야 할 각종 덕목을 12편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저자는 특히 다산이 목민관의 첫 덕목으로 강조한 ‘공렴’(公廉·공정과 청렴)이 오늘날 공직자들에게도 중요한 가치임을 강조한다. 박 이사장은 머리말에서 “다산이 평생 동안 추구했던 공렴이라는 가치를 공직자는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실천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오늘의 눈으로 읽는 목민심서를 엮었다”고 밝힌다.
두 책에서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인재 등용에 관한 대목이다. 세종은 인재를 등용할 때 출신 성분에 구애 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선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저자는 ‘의심이 나면 쓰지 않고, 썼으면 의심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주목한다. 세종은 신하들과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국정의 큰 가닥을 잡고 나면 실무 일체를 팀장 격인 신하에게 맡겼다. 그리고 설령 부족함이 있더라도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작은 허물은 덮어주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일례로 우의정과 좌의정 등을 지낸 황희는 젊은 시절 매관매직, 간통 등 여러 허물에도 세종의 신임 속이 아흔이 다 되도록 조정에서 봉직했다.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인재 채용과 관리를 다룬 ‘이전’(吏典)편을 통해 군·현 등 작은 행정 단위라도 사람 쓰는 것은 한 나라를 다스릴 때와 다를 게 없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목민관의 보좌진은 고을에서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뽑고, 능력 면에서 적임자가 없으면 자리는 채우되 일을 맡기지 말라고 했다. 또한 재주가 많은 사람보다 아첨하지 않고 쓴 소리를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도 당부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을 잘 써도 목민관의 마음가짐, 몸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저자는 “인간답게 대우하고 예의 바르게 대접하면서 바른 길을 제시해야 따르지, 법이나 위력으로 통제하려 하면 근본적인 개선을 할 수 없다”며 공렴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말한다. 고위공직자들이 새로 지명될 때마다 도덕성 검증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오늘날에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세종의 원칙 1만4,000원.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1만9,5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