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은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파장을 분석하는 데 골몰했다. 22~23일 외신을 통해 드러난 각국의 입장은 현안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중국은 한미 양국이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안정이 중요하다'고 적시한 데 대해 떨떠름해하며 말을 아끼고 있고 일본은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지원 대상이 한국군에 국한된 것을 두고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드러났다고 해석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 정책에서 한국의 협력을 대거 이끌어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의 반응은 ‘실망스럽지만 레드라인은 넘지 않았다’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미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양국 공동성명에 언급된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 대해서는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도 별도의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이는 주말이라 정부 기관이 휴무인 영향도 있지만 불쾌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지 소식통은 “중국 수뇌부에서 입장 정리가 아직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변학자들은 이번 공동성명의 수위에 대해 “레드라인은 지켰다”는 입장이다. ‘레드라인’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기본적으로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미국에 더 다가갔다’는 인식이 깔렸다. 뤼차오 중국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공동성명의 내용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면서 “(대만해협 표현은) 미국과 한국이 중국 문제에 관해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합의였다”고 봤다. 저우융성 외교학원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도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중립성을 버린 일본과 달랐다"며 ‘그나마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일본보다 더 배려했다’는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중국은 코로나19 백신, 반도체 등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에 한국이 밀착되는 데 대해 경계심을 드러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을 대중 봉쇄 정책에 동참하도록 만들려는 미국의 전술”로 간주했다. 신화통신도 “한국이 ‘탄도 주권’을 되찾는 대신 코로나19 백신과 반도체 등에서 ‘미국 우선’ 정책을 받아들였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박한 평가를 내렸다. 지난 22일 일본 공영 NHK방송은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중국이 직접 언급되지 않은 데 대해 “한미일 3국 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자극을 피하고 싶은 한국의 온도 차가 부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정부가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을 언급하고 쿼드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은 한미 양국이 의견을 모은 결과라고 봤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에 백신을 대규모 공급하는 방안이 아니라 한국군 대상의 백신 공급 약속을 내놓은 것은 쿼드 참여에 소극적인 한국에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북 정책에도 낮은 점수를 줬다. 마이니치신문은 “대중 정책, 러시아와의 관계, 이란 핵 협상 등 외교안보 과제가 산적한 바이든 미 행정부가 북한 문제 해결을 서두르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는 문재인 정권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도 “미국이 대북 특별대표에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는 배려를 한국에 보였다”면서도 “두 정상이 북한 제재 완화를 위한 조건 등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가 회담의 성과에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봤다. 닛케이는 “북한과의 대화 노선을 주창하는 한국 측의 요구를 미국이 폭넓게 받아들인 것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에 대한 대가”라고 평가했다.
특히 닛케이는 사설에서 “대만 문제를 축으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났다"며 "한일 갈등 장기화는 미국의 동맹 전략에도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 회복의 중요성을 짚은 셈이다.
미국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국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코로나19 백신, 반도체 등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협력 등 협력 분야를 세분해 제시했다”며 “이는 한국 정부가 중국과 심하게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된다”고 분석했다. 빅터 차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석좌는 “북한이 미사일 실험 등 도발 행위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곽윤아 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