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시 울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대게나 일출이 아니라 금강소나무(금강송)다. 경상북도 울진은 국내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다. 나무 속이 황갈색을 띄고 있다고 해서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송은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임금, 왕후의 관인 재궁(梓宮)을 짜는데 사용되면서 함부로 벌채하지 못하도록 나라의 보호를 받아 왔다.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에 1680(숙종 6)년 궁궐에 쓰는 나무라는 표시로 '황장봉계(黃腸封界) 표석'이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행정구역상 서면이던 지명을 금강송면으로 바꿀 정도로 금강송은 울진을 대표하는 자랑거리다.
수백 년 간 비밀의 공간이던 숲의 문이 열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년 전인 2011년의 일이다.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금강송 군락지 내 일부 구간을 ‘금강소나무 숲길’로 조성하고 일반에 개방하기 시작했다. 국비로 조성된 국내 1호 숲길이다. 십이령으로 불리는 이 길은 1950년대까지 울진과 내륙 지방을 오가던 보부상들의 운송로였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지 수 백 년. 덕분에 금강송 군락지는 멸종위기 1종인 산양(천연기념물 217호)을 비롯한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금강소나무 숲길을 걸으려면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금강소나무 숲길 탐방에 참여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하루 탐방 인원을 80명으로 제한하고 있고, 반드시 숲 해설사와 동반해야 한다. 총 7개 구간(79.4㎞)의 탐방로에서는 산양 서식지, 오백년 소나무, 왕피천, 화전민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탐방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왕복 10.48㎞(5시간 소요) 길이인 4구간 대왕소나무길이다. 수령 700년 된 ‘대왕소나무’와 삼국시대 실직국(悉直國)의 안일왕이 예국(濊國)의 침략에 대비해 쌓았다는 '안일왕산성터'가 남아 있다.
금강송 에코리움은 금강송 보호구역에 들어서 있는 유일한 휴양시설이다. 소광리 자체가 워낙 오지인 데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도심과 멀어져 주로 숲길 방문객들이 하루 묵어가는 용도로 쓰이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를 피해 ‘숲콕’을 즐기려는 이들 사이에서 명소로 떠올랐다. 금강송 군락지 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따로 숲길 탐방을 하지 않아도 숲속에 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산림청과 연계해 '가족탐방로' 예약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오백년 소나무’와 ‘못난이 소나무’ ‘미인송’ ‘관망대’를 들러오는 왕복 5.3㎞(3시간 소요)짜리 최단거리 코스다.
숙박객들은 숲 탐방 외에도 테라피, 전시관 관람, 식사 등으로 구성된 1박2일짜리 '리;버스(Re;birth)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숙소에서 ‘숲콕’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첩첩산중 오지 답게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볼 수 있고, 숲 안에 마련된 찜질방을 이용할 수도 있다. 장시간 걷는 게 부담인 이들을 위해 숙소 주변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자체 산책 코스도 갖추고 있다. 잠깐만 걸어도 빛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금강송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물론 제대로 ‘숲콕’을 즐기기 위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일단 숙소로 들어가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방에는 TV가 없고, 와이파이도 쓸 수 없다. 숙소 내에서는 음주, 흡연을 할 수 없으며,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10㎞나 떨어져 있다. 코로나19를 겪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울진에 갔다면 바다 구경도 빼놓을 수는 없다. 울진은 남쪽 후포항에서 북쪽 나곡항까지 해안선 길이가 100㎞에 달할 정도로 도시 자체가 바닷길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강원도 삼척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 경상도 최북단에 자리한 나곡바다낚시공원은 동해 바다를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한 곳이다. 원래 바다 낚시꾼들을 위한 다리였지만, 지금은 빼어난 절경을 보러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인생사진 명소가 됐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T자 모양의 낚시잔교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나곡바다낚시공원에서 남쪽으로 10여 분만 내려오면 국립해양과학관이다. 국내 최초의 해양과학 전시·교육 복합공간을 목적으로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특히 바닷속 세상을 만나는 해중전망대는 이색 볼거리다. 총 길이 393m의 스카이워크를 지나 전망대 내부로 들어가면 유리창 너머 수심 6m 아래 신비로운 바다 속을 구경할 수 있다.
/글·사진(울진)=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