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3차 고용정책심의회 및 제14차 고용위기대응반 회의에서 “코로나19로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전기차와 시스템 반도체 등 신산업은 성장하고 내연기관차, 석탄발전, 오프라인 서비스업 등 전통 산업의 일자리 충격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7일 취임한 안 장관이 공식 석상에서 전통 산업의 일자리 붕괴에 대한 우려를 강도 높게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정부가 디지털 전환에 따른 일자리 문제를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오는 7월 전통 산업이 신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공정한 노동 전환 지원 방안’을 발표한다. 하지만 방안에는 노동시장 재편의 핵심인 고용 유연성은 담기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발 산업 재편이 온다…고용 충격은 이제 시작=그동안 정부의 급한 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충격이었다. 정부 대책도 이를 빠르게 해소하는 데 집중됐다. 정부는 지난해 33조 6,000억 원을 투입해 22만 6,000개의 사업장을 지원했다. 청년·노인 등 일자리 취약 계층을 지원해 전통 일자리를 공급하는 데 급급했다. 하지만 정부가 재정으로 만든 일자리는 한계가 뚜렷했다. 양질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보다는 단기 일자리에 치중돼 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산업구조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전통 산업의 디지털 전환으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는 고용 충격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이유다. 고용 유연성 확보 등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 재편이 가져올 더 큰 파도에 대응하지 못하면 고용 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자리 전환 위험에 노출된 근로자 이미 133만 명=올 2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중국 등 주요 8개국에서 1억 명 이상의 근로자가 직업을 바꿔야 한다고 전망했다.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 쇼핑이 급성장하면서 대면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소매업·숙박업·요식업의 취약 계층 종사자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는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세계경제포럼의 분석에 기반해 국내 전통 산업의 일자리 전환 위험도를 전망했다. 전경련은 자동차와 기계, 금융 및 보험, 도소매 등 10개 업종의 근로자 833만 명 가운데 133만 8,000명(16.1%)이 일자리 전환 위험에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2024년이 되면 이 일자리 가운데 70만 6,000개가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았다. 이 같은 분석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8년 기준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전통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자리 전환 위험에 노출된 근로자의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특히 미래 산업의 핵심인 서비스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진출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은 통상 제조업보다 일자리 창출 능력이 높다. 하지만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 경쟁력(사업자당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가운데 28위다.
◇정부 7월 대책 발표…고용 유연화 없으면 무용지물=정부가 7월 발표할 대책에는 안 장관이 이날 언급한 내연기관차 근로자가 전기차· 수소차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지원 대책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 중립 대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석탄발전 분야 일자리에 대한 지원책도 발표될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인 고용 유연화는 이번 대책에 담기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계와 노동학계에서는 전통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이에 따른 노동시장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용 유연성이 제고되면 기업들은 경기 상황에 따라 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경쟁력을 높이고 청년 고용 여력을 높일 수 있다. 최근 전경련이 20~30대 성인 8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미래 일자리 확보를 위한 대책으로 ‘유연한 노동시장 도입(30.7%)’이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고용 유연성 확보는 노동시장의 근본 틀을 바꾸는 과정이라 경영계와 노동계의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양측의 이견 속에 아직 합의는 요원하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만 보더라도 여전히 양대 노총 중 한 곳인 민주노총이 불참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노동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는 (남은 1년 동안) 노동 개혁에 대한 타협 선을 어떻게 찾을지 밑그림을 그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