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 인생이 훅 꺾이는 건 언제부터인가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주로 나쁜 사건―개인의 불행이나 세계의 비극―을 겪는 순간이라고. 그래서일까. 나는 덜 늙고서도 늙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보내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몸의 관절이 오래 쓰여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 (한정원, ‘시와 산책’, 2020년 시간의흐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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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유재석이 방송프로그램 <유퀴즈>에서 한 청소년에게 물었다.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청소년의 무심한 답이 꼰대들을 웃겼다. “그냥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나이에 전전긍긍한다. 내가 꼰대인가 아닌가 초조하게 자문하고, 0자 붙은 나이가 될 때마다 ‘꺾였다’고 끙끙댄다. 하지만 한정원 작가는 인생이 꺾이는 건, 나이 기준이 아니라 ‘불행’과 ‘마음 씀씀이’ 때문일 거라 말한다. 비극을 겪은 사람은 폭삭 늙고, 마음은 닳아버린다.

마음에도 수명이 있다는 것을 나는 생각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갈수록 마음의 폭도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했는데, 돌아보면 아니었다. 상처를 주고받고, 뒤통수를 정확히 맞아 얼얼할 때마다 마음은 정확히 그만큼의 두려움을 배웠다. 비슷한 상황과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나쁜 경험과 기억을 플래시백으로 재생하며, 경고 사인을 보냈다. 불행을 겪고 나면 몸만 사리는 게 아니라 마음도 사려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꼰대란 타인에게 쓸 마음이 남아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도 몸처럼 화수분이 아니어서 수명과 한도가 정해져 있다. 큰 불행을 만나면 마음을 다독이고, 내 마음을 쓸 필요 없는 일엔 소모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수전노, 인생 꼰대가 되지 않는 일은 이토록 어렵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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