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로터리] 44조 원, 55만 명 어치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





외교 문제는 웬만해서는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코로나19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의 결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라고 자랑하기 전에는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마뜩잖았다. 백신 보릿고개를 넘고자 미국에 손을 벌리는 게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본질이었다. 우리가 어쩌다 다시 외국의 원호(援護) 물자에 목을 매는 처지가 됐는가. 그나마 반도체와 배터리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대한민국의 기업이 미국에 44조 원을 투자한다고 바이든 대통령은 세 번을 연달아, 그리고 끝 무렵에 두 번을 더하여 모두 다섯 번의 “Thank you”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리고는 알다시피 55만 명분의 백신을 받았다. 대통령의 기대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신 기근에 시달리는 국민으로서는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깜짝 선물”이라고.



백신 하나로 미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사람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게 눈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회담하게 된 것”을 자랑했다. 그런데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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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백신 개발국이 아니고, 대규모 선투자를 할 수도 없었던 우리의 형편에 계획대로 차질 없이 접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서구 사회에서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두 나라뿐이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2년도 채 안 돼 늘린 나랏빚이 160조 원이 넘는데 7,600만 명에게 접종할 백신 구매 비용 3조 8,000억 원은 그렇게 늘린 빚의 2.4%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세계 105번째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계획은 처음부터 세계 100위권 밖으로 맞춰져 있었으니 이 정도 형편에 만족하라는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았다. 대한민국 기업의 44조 원이 이렇게 미국에 투자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리쇼어링(reshoring)까지야 바라지 않더라도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기업은 대통령부터 나서서 뜯어말려야 할 판 아닌가. 우리 청년들의 코리안드림을 생각하면 혀를 찰 일이다. 크랩 케이크 점심 따위로 달래기에는 너무 아리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도 깨닫는 계기였으면 한다. 왜 백악관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지, 왜 반도체 동맹을 묶어 그 네트워크를 주축으로 세계 질서의 판을 새로이 짜고 있는지, 어떻게 안보와 경제 그리고 백신이 서로 떼려야뗄 수 없는 한 묶음이 되는지 이제라도 깨우쳤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감사를 전한 랠프 퍼킷 주니어 예비역 대령은 1950년 청천강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싸운 공로로 명예훈장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미국이 구축하는 글로벌 밸류체인(GVC)에 투자함으로써 어느 편에 섰는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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