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인터뷰] 네이버 정석근 “AI 패스트팔로 전략은 끝...글로벌 빅테크와 선두 싸움”

한국어 기반 초거대 AI 국내최초 선봬

영어 편향 탈피 우리 정서 담을수있어

구글 등 접해보지 못한 문제 해결 가능

패스트팔로어에서 이젠 퍼스트무버로

정석근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 /사진 제공=네이버정석근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 /사진 제공=네이버




“한국형 초거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선두 싸움에 나서겠습니다.”



네이버 인공지능(AI) 연구·개발 전문 조직인 클로바 CIC(사내독립기업)의 정석근 대표는 2일 서울경제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는 최근 차세대 AI로 불리는 초거대(Hyperscale) AI를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해외에서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주도로 만든 GPT-3 등 1년 전부터 초거대 AI가 출시돼 연구·개발이 활발하지만 국내는 이제서야 기업들이 초거대 AI를 개발한다고 발표하는 단계다.

네이버는 이보다 한 발 앞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고 사양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고, 올해 1분기부터 초거대 AI를 검색 등 일부 서비스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AI를 개발할 때 모델이 갑자기 학습한 데이터를 까먹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하는 등 여러 문제에 맞닥뜨린다”면서 “이전에는 구글 사례를 살펴본다거나 해외 논문을 뒤져서 해결을 했는데 이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제들을 발견하고 있다. 패스트팔로어(빠른추격자)가 아닌 퍼스트무버(개척자)로 한 발짝 나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로부터 네이버에서 개발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의 추진 배경과 경쟁력,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10월 슈퍼컴퓨터 도입 발표, 올해 3월 서울대, 5월 KAIST까지 굉장히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 정 대표 : 클로바란 조직이 생긴지 4년 반이 됐다. AI를 굉장히 오래 연구, 개발해 왔다. 한국, 일본 통틀어 가장 많은 투자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AI의 역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단계는 넘었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영역이라고 봤다. 중요한 것은 스케일의 문제다. GPT-3를 보며 굉장히 큰 모델을 만들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규모 AI에 대한 확신이 섰고 의사결정이 쉬었다. 또 창업자(이해진 GIO)가 ‘우리 한국어 데이터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고 내부 프로세스가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해 7~8월께 검토를 시작해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주 안 걸렸고 10월에 슈퍼컴퓨터 도입을 발표, 12월 설치했다.

-초거대AI는 네이버뿐만 아니라, SKT, KT, 카카오, LG 등 국내 내로라 하는 IT 대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네이버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 정 대표 : AI를 모델링하고 연구하는 분들이 한국, 일본 포함 가장 훌륭한 인재다. 논문 숫자만 놓고 봐도 리서치 역량은 최고다. 서울대, KAIST와 손잡은 것도 국내에서 제일 잘하는 대학과 학생들을 네이버가 선점한 것이다. 긴밀한 협력이 기대된다. 또 초거대AI를 만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핵심은 AI를 기반으로 만든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실제 적용하는 역량이다. 활용 가능한 툴로 만들고, 윤리적인 문제를 컨트롤 하는 등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 초거대AI 개발은 시작일 뿐이다. 뭐든 경영자가 ‘하자’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다. 화성에 가자고 해서 화성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듯 말이다. 네이버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이를 뒷받침 할 역량이 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와 견주었을 때도 궁금하다.

▲ 정 대표 : 그 어느때보다 격차가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구글 I/O(연례 개발자 행사)에서 명왕성과 대화하는 람다(구글 AI 서비스)를 보며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네이버도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Q&A 데모 버전을 보여드렸는데 맥락은 같았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커 보일 수 있지만 글로벌에선 작은 회사다. 당연히 영어 기반 모델로는 GPT-3를 비롯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잘한다. 다만 네이버는 국내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해 볼만 하다고 본다. AI라는 것이 그 사회의 언어, 집단지성을 인텔리전스화하는 것이다. 네이버가 지난 20여년간 서비스한 것을 집약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고 그만큼 국내 고객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하이퍼클로바를 통해 임진왜란 관련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하이퍼클로바를 통해 임진왜란 관련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


-AI 주권을 강조한다. 한국에서 해외 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이 잘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정 대표 : 한국 기업이냐 아니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외국 회사가 충분히 투자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면 괜찮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기술을 개발하려면 국내 기업이 나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00만큼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봤을 때 100을 모두 활용한다면 집단지성을 통해 무슨 서비스든 만들 수 있다. 예컨대 고객 응대 서비스에서 한국 사람이 만든 책을 모두 다 읽은 존재라면 한국 사람의 정서, 역사를 이해하고 응대를 잘 할 것이다. 그런데 외국의 어떤 사람이 한국어 책 10권을 읽고 그럴법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한국이란 나라의 지성을 대표할 수 있을까. 우린 100만큼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10만큼만 활용하는 것이지 않나. 해외 AI 학습에는 한국어가 정말 조금 들어갔다. 대부분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영어권은 상관없겠지만 그 외 지역은 얘기가 다르다. 우리가 직접 만들면 최고 전문가 수준인데 해외 AI를 활용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의 AI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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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AI 경쟁력을 갖추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 정 대표 : 인력난이다.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그분들에게 의미있는 환경을 제공해 드리는 게 가장 큰 과제다. 이번 하이퍼클로바 발표를 한 가장 큰 이유도 좋은 분들께 네이버를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이만큼 투자하고 있고 당신들은 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실제 행사 이후 네이버에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셨다.

-이번 서울대, KAIST 산학 협력으로 인력난이 어느정도 해소가 됐을까.

▲ 정 대표 : 서울대, KAIST에서 각각 100명 규모로 연구센터를 만들었다. 다만 아직까지 서비스, 앱을 개발하는 엔지니어 분들 입장에서는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서울대, KAIST와의 공동 연구센터 설립을 두고 국내 기업 중 가장 선제적으로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정 대표 : 국내에서 산학이 공동 연구소를 설립하는 경우는 네이버가 처음이다. 기존 산학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다. 기업이 대학 졸업한 학생 소개받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으로 과제를 해나가고 미래를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최근 AI 연구를 하며 정말 어렵고 새로운 문제들을 발견했다.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제다. 의미가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기존 문제들을 접하고 구글이든 논문이든 리서치해서 따라잡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패스트팔로어(추격자)가 아니라 앞에 있는 선수 중 하나가 됐다.

대학 입장에서도 AI의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더 매력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수요가 있다. 시대가 달라졌는데 과거 기술을 파고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초거대 AI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문제들을 접해야 더 매력있고 좋은 논문이 나온다. 교수님들과 구체적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대규모로 문제 푼다. 지금까지 산학 형태의 AI팀이 많았지만 네이버 모델이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하이퍼클로바를 통해 시연한 AI 대화 모습. ‘왜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냐’는 물음에 답하고 있다.하이퍼클로바를 통해 시연한 AI 대화 모습. ‘왜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냐’는 물음에 답하고 있다.


-네이버에서 개발한 하이퍼클로바를 다양한 서비스로 내놓는다고 했다. 언제쯤 나올지, 어떤 서비스를 준비 중에 있는지.

▲ 정 대표 : 당장 준비중인 것도 있다. 상품명이나 문구를 AI가 대신 지어주는 마케팅 서비스 등이 있다. 네이버는 ‘모두를 위한 AI’라고 표현한다. 3~5명 수준의 SME(중소상공인) 입장에서 1명을 줄여주는 것은 효과가 크다. 예를 들어 동대문 옷가게를 3명이 운영하는데, 고객 응대나 마케팅 문구 작성과 같은 일만 줄여줘도 업체 입장에서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개발을 몰라도 누구나 AI를 쉽게 다룰 수 있게 하는 게 네이버의 목표다. 초거대AI를 활용하면 사업성이 떨어지더라도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이퍼클로바는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될까.

▲ 정 대표 : 목표에서 절반 정도 왔다고 본다. 텍스트 관련 기능은 거의 다 됐고, 동영상이나 음성, 이미지 등 다른 양식을 처리할 수 있는 모델로 고도화하고 있다. 또 AI가 장기적인 기억력을 갖고 있지 않아서 자기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한 설계도 필요하다. 주변 시스템 모델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

-AI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빠르게 발전하는 데 대한 불안감도 크다.

▲ 정 대표 : AI가 엇나가는 결론, 잘못된 말을 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말을 가르치는데 밖에서 욕이나 편견 가득한 내용을 배워올 수 있다. 사람도 누구나 편견이 있기 마련이고 욕을 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내뱉지 않을 뿐이다. AI 능력이 발전하면서 고민이 많다. 상용화를 하려면 AI가 생각한대로 다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상황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 툴을 만들어야 한다. ‘욕설 하지마’, ‘이것은 편향적 발언이야’ 등 계속 가다듬어야 한다.

윤리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서울대 인공지능 정책 이니셔티브(SNU AI Policy Initiative·SAPI)와도 여러 협력을 한다. 강령도 만들고 구체적인 사안까지 살펴본다. 윤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내놓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미래 발전을 위해 AI가 완벽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넘어선 잘못까지 넘어가자는 말이 아니다. 사람도 사춘기의 아이가 잘못을 해도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잘 타이르고 가르치지 않나. 예외라는 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AI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써주면서 발전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장통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한국 최고’만이 네이버의 목표는 아닐 것 같다.

▲ 정 대표 : 글로벌 진출도 큰 과제다. 이미 일본에서도 AI 사업을 하고 있고, 자회사 라인이 야후재팬과 경영통합을 하면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네이버, 라인, 야후 등에서 AI를 가지고 전세계에서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일인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든 신규 사업자여도 효율성 있게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이퍼클로바 경쟁력을 높여 나가겠다. 어떤 기업과도 경쟁을 할 수 있는 체력을 AI로 만드는 게 저희 목표이자 희망이다.

/박현익 기자 beepark@sedaily.com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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