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가 개별 부처의 의견만 담긴 법안이 무더기로 발의되면 발생하는 중복 규제 등의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에게 특정 입법을 요구할 경우 법제처에서 사전에 다른 부처와의 이견을 조율하는 ‘입법 사전검토제’를 도입을 추진하게 된다. 정권 말 규제 권한을 둘러싼 부처 간 ‘우회 입법’ 경쟁이 심각해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경고의 목소리를 냈고, 법제처가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다.
3일 법제처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입법 사전검토제'에 대해 “일반적인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검토가 아니라 정부에서 당정협의를 거쳐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는 법안을 발의하기 전에 다른 부처 이견이 있을 경우 미리 조율된 내용이 발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제처는 지난 2일 홈페이지를 통해 당정 협의를 거친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사전검토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법제업무 운영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법령안 주관기관의 장은 정당 또는 국회의원과 협의해 입법을 추진하는 법률안에 대해 법제처장에게 사전검토를 요청해야 한다”는 제11조 4항이 신설됐다. 대통령령에 따라 사전검토의 방법이나 절차는 법제처장이 정한다.
입법 사전검토제 도입은 국회에서 규제 권한 등 이권을 둘러싼 각 정부 부처의 의견이 반영된 의원발 입법이 난무하면서 발생하는 중복 규제, 밥그릇 싸움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의원 발의안 마다 지급결제 권한을 갖는 기관이 다르다. 가령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금융위가 전자지급거래청산 기관의 허가 취소 및 임직원 징계 등의 권한을 갖는다고 명시하지만, 김주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한국은행이 지급결제 운영, 관리, 감시, 국내외 협력, 발전 촉진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이와 같은 청부 입법 현상을 두고 “여러 규제가 입법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양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각 부처에선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달라”며 법제처를 향해 “부처 간 협의와 이견 조정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혜린 기자 r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