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으로 조선시대의 풍속화가 있다면 일본에는 우키요에(浮世畵)라는 판화가 있었다. 에도시대에 생겨나 18세기에 크게 유행했는데 목판화로 제작돼 대중적으로 통용됐고 물건을 감싼 포장지로 사용돼 유럽에까지 건너갔다. 이 우키요에를 눈여겨 보고 열광한 이들이 있었으니 당시 새로운 화풍에 목말라 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이었다.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 등 인상파와 후기인상파를 대표하는 상당수 화가들이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는 일도 많았다.
클로드 모네의 ‘포플러 나무’ 연작에 영향을 준 일본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1760~1849)의 우키요에 대표작 ‘도카이도 호도가야(東海道 程ケ谷)’를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문화관 일본실 상설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난 1월에 새롭게 개편해 재개관한 일본실의 첫 상설전시 교체이기도 하다.
‘호도가야’는 호쿠사이가 제작한 대표적인 우키요에 연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 하나다. 도카이도에 있는 호도가야 역참에서 본 후지산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후가쿠(富嶽)’는 후지산의 별칭으로, 호쿠사이는 일본 각지에서 보이는 후지산의 모습을 36장의 연작으로 제작했다. 이 작품을 접한 모네는 ‘호도가야’의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사물 사이 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이라는 것은 당시 서양에서는 그려지지 않았던 풍경이다. 모네는 이처럼 허를 찌르는 구도와 산뜻한 색면 구성, 반복되는 모티브 등 우키요에의 참신한 구도를 자신의 작품에 응용했다. 이는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한 자포니즘(Japonism·일본풍 취향)이 서양 인상파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상설전 정기교체에서는 에도 시대(江戶時代·1603~1868)의 놀이 문화를 보여주는 병풍 ‘저내유락도(邸?遊樂圖)’도 선보인다. 또 에도 시대 때의 번화가이자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도쿄 아사쿠사(?草) 센소지(?草寺) 일대의 모습과 풍속을 묘사한 ‘에도명소도권(江戶名所圖卷)’도 구입 후 최초로 전시됐다. 이 밖에도 에도 막부의 전속 화가 집단이었던 가노파(狩野派)의 작품으로,고위 무사 저택의 실내를 장식했던 병풍인 ‘사계화조도(四季花鳥圖)’와 17세기 일본에서 직접 생산한 대표적인 찻잔인 ‘구로오리베(黑織部)’ 다완도 만날 수 있다. 9월30일까지. 무료 관람.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