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바지락 끓이는 여자


려원


이혼서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여자는 바지락을 씻어요

조개들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있어요

더 이상 밀물이 들지 않는 해안도 있다고

중얼거리는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요

결막염 걸린 눈은 수평선에 걸린 노을처럼 붉어요

조바심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해요

거품을 뱉어낸 조개들이

입을 벌리고 부글부글 소리를 내요



밸브를 잠그고 깨소금을 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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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국물을 떠올린 숟가락에

가슴에서 부글부글 올라온 눈물이 뚝 떨어져요

알맹이를 내놓은 껍질들을 땅에 버려요

식탁 위 이혼서류가

바지락 국물에 젖어가고 있어요

썰물은 잘 찢어져요

해안선은 두 세계가 찢어진 곳이에요

서류는 이미 만조로 깊고 외딴 섬처럼

서명란의 빈칸이 둥둥 떠다녀요





마음껏 울어도 돼요. 바지락 끓는 소리가 흐느낌을 지워줄 거예요. 눈물이 넘쳐나니 국물로 채워요. 우리 발밑을 받쳐주는 어머니 대지도 이혼을 거듭했다죠. 한 몸인 줄 알았던 판게아가 갈라져서 곤드와나와 안가라가 되었다죠. 곤드와나가 갈라져서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되었다죠. 안가라가 갈라져서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가 되었다죠. 지금도 판판이 싸우면서 불의 고리마다 활화산 이혼 도장을 찍고 있죠. 상처마다 대양이 출렁거리고, 아픔마다 생명이 깃들고 있죠. 목 놓아 울어도 돼요. 태평양 같은 바지락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당신은 우뚝 하나의 대륙이 될 거예요.<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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