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한국 대표 공포물이 12년 만에 부활해 향수를 진하게 자극했다. 여기에 사회적 화두를 던지며 메시지의 여운까지 남겼다. “몸을 던져 연기했다”는 말이 체감될 만큼 극을 휘어잡은 김서형의 연기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여고괴담’ 시리즈를 10편까지 제작하고 싶다고 한 故 이춘연 대표의 바람처럼 명맥이 이어질 가능성이 짙어졌다.
영화 ‘여고괴담 여섯 번째 이야기 : 모교’(이하 ‘여고괴담6’)는 고교시절의 기억을 잃은 은희(김서형)가 모교에 교감으로 부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늘 그랬듯 이야기는 미스터리하게 흘러간다. 교장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 수상한 낌새가 다분하고, 담임 선생에게 반항하는 하영(김현수)에게는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듯하다. 은희가 폐창고를 찾은 후 계속 따라다니는 의문의 문고리는 그의 잃어버린 기억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피해자이지만 어른들의 방치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하영은 절친한 친구가 목숨을 끊은 학교 폐창고에 드나든다. 폐창고는 은희의 고교 시절 화장실로 쓰이던 곳. 불미스러운 일 이후 폐창고가 됐고, 현재 학교 내에서는 ‘고스트 스팟’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곳에서 은희와 하영은 마주치게 되고 학교에서 친구를 잃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은희는 알 수 없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되고 학교에는 기이한 일들이 계속된다.
‘여고괴담6’는 이전 시리즈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이지만 ‘여고괴담1’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여고괴담’ 시리즈가 학생 중심으로 흘러간 것과 달리 모교로 부임한 교사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이 같고, ‘여고괴담’의 시그니처인 최강희의 복도신 점프컷도 오마주됐다. 요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흙 운동장과 나무 프레임 창문 등을 강조한 것도 과거의 향수를 강조했고, 사춘기 시절 친구 사이의 질투와 시기 같은 감정을 다룬 것도 비슷하다.
12년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차별화된 설정은 SNS를 활용해 소문이 퍼지는 것, 유튜버 지망생인 학생들이 고스트헌터가 되겠다며 폐창고와 관련된 소문의 진상을 찾아 나서는 것 정도다.
‘여고괴담6’는 공포물이지만 자극적인 공포에 집중하기보다 인물들의 사연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영 감독은 영화적인 설정이 아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된 충격적인 역사적 비극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영화의 큰 축이다. 또 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교사의 성추행, 입시 비리 등 이슈가 적나라하게 표현돼 생각을 곱씹게 만든다. 그러면서 괴담보다는 인간의 잔인성과 잔혹성,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가 강조됐다.
다만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이기에 모든 사연에 힘을 쏟다 보니 전체적인 구조가 엉성해졌다. 반전의 키로 사용된 영화의 큰 축이 된 사건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메시지를 응축하기 위해 길어진 러닝타임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대신 김서형의 섬세한 내면 연기가 몰입도를 높인다. 그는 기억을 잃고 혼란스러운 감정 표현을 탁월하게 해냈다. ‘SKY캐슬’ ‘아무도 모른다’ 등에서 보여준 걸크러시와는 다른, 상처에 아파하는 처연한 눈빛 연기가 독보적이다.
신인 발굴로 유명한 ‘여고괴담’이기에 새로운 얼굴을 눈여겨보는 재미도 있다. 가수 비비가 대표적인 신선한 얼굴. 그는 본명인 김형서로 ‘여고괴담6’를 통해 스크린에 첫발을 내딛고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미스터리한 학생으로 출연해 공포를 이끌어갔고, 과거 회상신에서는 순수한 학생의 모습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는 첫 연기임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수 비비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6월 17일 개봉.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