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중반까지 3타 사이에 8명이 모인 대혼전이 이어졌다. 시시각각 선두가 바뀌는 안갯속 경쟁이 마지막까지 계속된 가운데 우승컵은 돌고 돌아 결국 박민지(23)에게 찾아갔다.
‘악바리’ 박민지가 시즌 4승째를 올렸다. 올 시즌 3승을 한 선수도, 2승을 한 선수도 없는데 혼자 벌써 4승을 거뒀다. 8개 출전 대회에서 4승이니 두 번 나가면 한 번 우승하는 엄청난 승률이다.
시즌 초반이라 할 수 있는 6월에 4승을 올린 선수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역사상 신지애와 박성현밖에 없었다. 신지애는 2007·2008시즌에, 박성현은 2016시즌에 6월 기준 4승을 챙겼다.
박민지는 ‘역대급’ 페이스로 한 시즌 최다 승 기록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부문 기록은 신지애의 9승(2007년)이다. 2위 기록은 신지애, 박성현의 7승.
13일 경기 파주의 서서울CC(파72)에서 끝난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즈에서 박민지는 사흘 합계 15언더파 201타를 기록, 2위 박현경(14언더파), 3위 안지현(13언더파)을 따돌리고 우승 상금 1억 4,400만 원을 챙겼다. 1타 차 공동 2위로 3라운드를 출발, 버디 7개(보기 2개)로 5타를 줄여 역전에 성공했다. 5년 차에 통산 8승째다.
2라운드에 막판 네 홀에서 5타를 줄여 우승 경쟁에 뛰어들더니 이날도 무서운 뒷심으로 타이틀을 품었다. 마지막 5개 홀에서 버디 4개를 몰아쳤다. 올 시즌 스트로크 플레이 대회에서 올린 3승이 모두 역전승이니 이쯤 되면 ‘뒷심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상금 1위(약 6억 4,800만 원)를 굳건히 지킨 박민지는 대상(MVP) 포인트에서도 장하나를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섰다.
중후반까지도 박민지의 우승은 점치기 어려웠다. 장하나, 박현경, 안지현이 각축을 벌이는 흐름이었다. 그러다 14번 홀(파4)부터 박민지가 튀어나왔다. 이 홀 버디로 바짝 따라붙더니 15번 홀(파5) 버디로 공동 선두가 됐다. 16번 홀(파4)에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치나 싶던 두 번째 샷이 그린에 떨어진 뒤 절묘하게 스핀이 걸려 핀 쪽으로 향했다. 14~16번 세 홀 연속 버디에 박민지는 단독 선두로 올라갔다.
17번 홀(파3) 티샷 실수로 보기가 나왔지만 박민지는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클래스’를 입증했다. 내리막 경사의 90m 거리 두 번째 샷을 핀 1m 남짓 거리에 붙인 것. 새어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은 박민지는 침착하게 끝내기 버디 퍼트를 넣은 뒤 그제야 이를 보였다.
어머니가 올림픽 핸드볼 은메달리스트(김옥화 씨)인 박민지는 악바리 골퍼로 유명하다. 중1 때 새벽 2시쯤 일어나 9홀짜리 파3 골프장을 하루 7바퀴씩 돌기도 했다. 박민지는 그저 “노력파라기보다는 그냥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매일 2시간씩 턱걸이·달리기·팔굽혀펴기를 했다. 160㎝가 될까 말까 한 크지 않은 몸으로 250야드 장타를 날린다.
지난 한 주 휴식을 취하고 나온 박민지는 “1라운드 전반에 샷과 퍼트 감이 다 좋지 않아서 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다리면 버디는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풀어갔다”며 “1승 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2승 하니 더 편해졌다. 목표를 다 이뤄 두려움 없이 편하게 경기 하니 더 잘 풀린다. 전반기 끝나기 전에 1승 더 하는 게 새 목표”라고 말했다.
4월 KLPGA 챔피언십 우승자 박현경은 17번 홀 어프로치 샷 실수가 뼈아팠다. 3온 1퍼트 보기를 범하면서 단독 선두에서 공동 선두로 내려갔고 마지막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해 연장에 못 갔다.
지난해 2부 투어에서 2승을 거둬 1부 투어에 복귀한 안지현도 한때 단독 선두를 달렸으나 뒷심이 모자라 데뷔 첫 승을 미루고 개인 최고인 3위에 만족해야 했다. 2라운드 단독 선두였던 박소연은 4타를 잃어 7언더파 공동 17위까지 내려갔다. 17번 홀 더블 보기 포함, 이븐파에 그친 지난주 우승자 장하나는 9언더파 공동 9위로 마감했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