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50인 미만 기업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 도입되는 가운데 뿌리 산업, 조선업 등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업종에 대해서만이라도 계도 기간을 부여하고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입출국 제한으로 외국인 근로자마저 채용할 수 없어 경영 어려움이 큰데 주 52시간 근로제가 곧바로 적용될 경우 매출에 직격탄이 예상된다는 우려에서다. 근로시간이 단축될 경우 업계 평균임금이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 근로자들도 ‘투잡’을 뛸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많다.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를 비롯해 복지를 위해 마련된 법안이 오히려 직업 안정성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으며 경기회복세가 나타나는 현시점에 오히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 단체는 뿌리·조선 업계에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로제 계도 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이들 경제 단체는 “50인 미만 기업에도 대기업과 50인 이상 기업처럼 1년 이상의 추가적인 준비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뿌리·조선 산업 분야는 50인 미만 기업의 44%가 아직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27.5%는 7월 이후에도 준수가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또한 “국회 분석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으로 근로자 급여가 12.6% 감소한다”며 “특근 수당이 많은 조선 업계는 근로시간 단축 시 업계 평균임금이 10년 전으로 돌아가 다수의 근로자들이 소득 보전을 위해 ‘투잡’을 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5단체는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현장에서 느끼는 경제 상황이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특단의 보완책 없이 50인 미만 기업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큰 충격을 주게 된다”면서 “50인 미만 기업에도 대기업과 50인 이상 기업처럼 추가적인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들 5단체는 기업이 경기 회복 시 대폭 증가될 생산량에 대응할 수 있도록 △특별 연장 근로 인가 기간 확대 △영세 기업들의 낮은 대응력을 감안한 8시간 추가 연장근로제 대상 확대 등 제도 보완을 요구했다.
경제 단체들이 뿌리·조선 등 산업에 대해서만이라도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뿌리 산업 등은 인력난, 원자재값 급등, 제조업 전반의 불경기 등 ‘3중고’를 겪고 있는 데다 경제의 성장 엔진이기 때문에 산업을 보호하고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주 52시간제를 맞춤형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뿌리 산업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기업은 인력이 고령화된 데다 외국인 인력 확보도 어렵고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 압력을 받는 등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복합적으로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며 “수출 중기, 혁신 기술을 보유한 중기는 주 52시간제로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 52시간제는 업종별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노 단장은 “프랑스는 영세 중기의 경우 노사가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도 근로자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는 차원에서 사업주와 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산업 현장에서도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보완하고 유연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조선 업계는 “대표적인 수주 산업인 조선업은 국내법을 고려하지 않는 해외 선주들의 주문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로는 대응이 어렵다”며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야외 작업이 빈번해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면 작업을 미루는 등 예측할 수 없는 근로 일정 변경이 잦을 수밖에 없어 유연근로제 도입을 위한 인위적인 근로시간 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고령화된 숙련공과 외국인 근로자가 다수 근무하는 뿌리 산업의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도 버텨내지 못해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신규 채용이 쉽지 않아 주 52시간제가 도입될 경우 줄폐업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부담이 커진 중소기업들은 코로나19로 외국인 인력마저 입국이 막혀 인력난까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자가격리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외국 인력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계는 “추가 근로시간 확보를 위해 인력 충원을 해야 하지만 물량이 계속해서 많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갑자기 주문이 몰릴 때를 대비해 추가 인력을 채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최근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전반적인 생산량이 줄어 한 번씩 몰리는 주문을 위해서 신규 채용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는 “외국인 근로자 입국이 정상화될 때까지만이라도 계도 기간이 부여돼야 한다”며 “30인 미만 기업과 비슷하게 영세한 50인 미만 기업까지 8시간 추가 연장 근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에도 가전, 반도체, 게임, 정보기술(IT), 증권, 대형 유통 기업 등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중소기업은 원자재값 급등 등으로 인한 손실을 그대로 떠안고 경영난을 겪고 있어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대기업과 중기의 양극화가 코로나19 이후 더 심화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기의 지난해 매출액은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며 3분기까지는 전년 대비 6.0% 감소했고 대출액은 15.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모가 작을수록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면서 “중소기업은 지원금과 각종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연승 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