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이 고객 자산을 활용해 이익을 얻고도 고객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고의적으로 감춰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거래소에 예치된 암호화폐 ‘이오스(EOS)’를 한데 묶어 블록체인 네트워크 거버넌스에 참여한 뒤 보상으로 받은 암호화폐를 고객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거래소의 이익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빗썸은 고객들의 EOS를 활용하는 과정에서도 사전에 충분한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2019년부터 거래소와 회원들의 EOS를 활용해 이오스 ‘블록프로듀서(BP)’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이오스 네트워크에서는 EOS 보유자가 자신의 이오스를 스테이킹(암호화폐의 일정량을 지분으로 고정)해 BP 투표에 참여한 뒤 21명의 메인 BP로 선정되면 보상으로 EOS를 제공한다. 선정된 BP는 블록 생성에 따른 EOS 보상을 자신에게 투표해준 투표자에게 분배할 수 있다. BP 후보들과 관계를 형성해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빗썸이 특정 BP에 투표해주는 대가로 EOS를 받아왔다는 얘기다.
문제는 빗썸이 이런 방식으로 EOS 자산을 늘려오면서 고객에게는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사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글로벌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가 고객들에게 정기적으로 EOS 보상을 지급하는 것과 대비된다. 더욱이 빗썸은 사전에 ‘스테이킹’될 수 있는 암호화폐 7종을 공지하면서 EOS는 제외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는 “빗썸 측이 고객 동의 없이 고객의 자산을 활용해 이득을 얻었을 경우 부당이득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민사적으로 빗썸 측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가 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빗썸 관계자는 “EOS BP 참여 보상은 투표 참여에 대한 위임 동의 이후 기념 이벤트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이벤트는 지난해 7월 종료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빗썸의 이 같은 행태는 업계에 만연한 암호화폐 투자자의 권익 무시 관행이 반영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빗썸은 EOS BP 투표를 시작한 후 △동의 절차 △BP 후보 투표 선정 기준 △수익 배분 등 관련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될 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했다. 업계에서는 빗썸이 사전에 법적 검토를 마친 뒤 이 같은 부적절한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고 본다. 투자자가 약관 무효를 주장하며 빗썸에 부당이득 청구 소송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법원이 투자자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 거래소는 투자자에게 보상을 하고 있어 대비된다.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는 지난해 3월 EOS 스테이킹 서비스를 출시하며 기간별 수익률을 명시하고 그에 따라 투자자에게 보상을 나눠주고 있다.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거래소가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투자자의 권익을 무시하는 행태는 빗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1위 암호화폐거래소인 업비트는 암호화폐 5종을 상장 폐지하고 25종을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공지를 11일 기습 발표하면서 해당 프로젝트와 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다.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존폐가 달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사전 협의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거래 수수료 이익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투자자의 권익은 뒷전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이다.
/도예리 기자 yeri.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