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실 수사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여러 보완 장치를 도입했지만 올 들어 내사 단계에서 종결되는 사건 비중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내사는 정식 수사가 시작되기 전 단계로, 입건이 이뤄지지 않은 채 이뤄진다. 재수사 끝에 부실 수사로 밝혀진 ‘정인이 사건’이나 ‘이용구 전 차관 폭행 사건’ 모두 사건 초기에 내사 종결된 바 있다.
25일 서울경제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경찰이 맡은 사건 51만 8,905건 가운데 내사 종결된 사건은 9만 1,130건으로 전체의 17.6%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15.7%와 비교하면 1.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앞서 2018년(14.2%)이나 2019년(15.4%)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높아진 수치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시행 초기라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내사 종결 비율이 증가한 듯하다”며 “현재 관련 부서를 통해 구체적 분석을 의뢰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내사 종결은 정식 수사가 개시되기 전 단계로, 사건 번호가 부여되지 않는 데다 검찰로도 보고되지 않는다. 외부 감시를 받지 않는 탓에 수사 외압이나 부실 수사 등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이 발생했다. ‘봐주기 수사’ 의혹으로 홍역을 치른 이용구 전 차관 사건도 입건 전 조사 단계에서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 혐의가 적용돼 내사 종결 처리됐다. 지난해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 끝에 1년 6개월 만에 사망한 영아 ‘정인이 사건’ 역시 사망 전 수차례 학대 신고에도 경찰은 양부모를 입건조차 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원년인 올해 내사 종결 사건 비중이 늘어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 시행에 발맞춰 수사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따지는 ‘수사심사관’과 수사 결과의 적절성을 점검하는 ‘책임수사지도관’에 이어 외부 심사 시스템인 ‘수사심의위원회’ 등 3중 심사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부터 일선 경찰서에 배치된 수사심사관들이 내사 종결 결정에 대해 재차 점검하고 있는 만큼 내사 종결 비중이 줄었을 것으로 예측돼왔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형사팀장은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도 과거 경고 조치로 끝날 사안에 대해 되도록 입건 조치하고 있다”며 “입건해도 무혐의가 예상되지만 일단 절차를 거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권영세 의원은 “외부 감시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내사 종결이 늘어나는 건 수사기관의 신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찰의 내·외부 점검 체계를 강화하는 등 수사의 완결성과 공정성을 강화해 신뢰 받는 수사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청은 지난 9일 이용구 전 차관 사건에 관한 후속 대책을 발표하면서 일선 경찰서에서 취급하는 중요 내사 사건은 시도 경찰청을 거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보고해 지휘를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경찰서 수사심사관이 내사 사건의 불입건 적절성 여부를 객관적으로 심사·분석하고, 시도 경찰청 책임수사지도관이 주기적으로 이를 점검해 재수사 필요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또 현재 사용 중인 ‘내사’라는 용어를 ‘입건 전 조사’로 바꾸고, 불입건 결정(내사 종결) 사유도 수사 사건처럼 구체화·세분화했다. 지금까지 ‘내사 종결’로만 표시했지만 앞으로는 ‘범죄 혐의 미발견’ ‘정당방위 사유 명백’ ‘반의사불벌죄 합의·시효 만료’ 등으로 분류해 사건 관계인에게 통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