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1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문에서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 정치로 대동 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억강부약은 이 지사의 정치 철학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알려져 있다. 이 지사는 이날 선언문에서 ‘성장’이라는 단어만 11번 언급하며 중도층에 대한 구애를 적극 시도했다.
이 지사는 자신을 ‘흙수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규칙을 지켜도 손해가 없고 억울한 사람도 지역도 없는 나라, 기회는 공평하고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지사의 핵심 측근은 “이 지사는 어릴 때부터 지녀온 ‘기층 민중’ 의식이 매우 강한 캐릭터”라며 “이번 연설문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고 말했다. 기층 민중은 국가나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피지배 계층을 일컫는 말로, 이 지사가 약자를 배려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선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 지사는 당 안팎에서 거센 비판을 받지만 지지층의 선호도가 높은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추진 의지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기본소득을 도입해 부족한 소비를 늘려 경제를 살리고 누구나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도에서 거둔 정책 성과를 소개했다. 그는 “청년 배당으로 난생처음 과일을 사먹었다는 청년, 경기도의 도움으로 체불임금을 받아 행복하다는 알바 청소년을 기억하겠다”며 “여성들이 안전에 불안을 느끼고 차별과 경력 단절 때문에 고심하지 않는 나라, 죽음을 무릅쓰고 노동하지 않는 나라, 사교육비에 부모님 허리가 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본소득 재원 마련의 현실성 등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공감대가 여전히 형성되지 않아 향후 경선 레이스에서 경쟁자들로부터 집중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이 지사 캠프에 속한 현역 의원들도 기본소득에 우호적이지 않은 당 안팎의 여론을 고려해 관련 발언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여권 내 부동의 1위라는 지위를 감안한 듯 이날 선언문은 전반적으로 선명성보다는 포용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와 관련해 그는 “정쟁 정치가 아니라 누가 잘하나 겨루는 경쟁 정치의 장을 열겠다”면서 “실용적 민생 개혁에 집중해 작더라도 삶을 체감적으로 바꿔가겠다”고 설명했다.
이 지사는 문재인 정부의 대표 실정 분야로 꼽히는 부동산과 일자리, 소득 주도 성장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실제 부동산과 외교 문제 등에 대해서도 무난한 수준의 입장을 공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동산은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는 점, 외교의 경우 중도층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선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실거주 주택은 더 보호하되 투기용 주택의 세금과 금융 제한을 강화하고, 적정한 분양 주택 공급, 충분한 기본 주택 공급으로 더는 집 문제로 고통받지 않게 하겠다”며 원론적 수준의 해결책만 제시했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해서는 “강력한 자주 국방력을 바탕으로 국익 중심 균형 외교를 통해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새 길을 열겠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이 지사는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욕설 파문에 대해 재차 사과하며 정면 돌파의 의지를 나타냈다.
그는 “제가 가족에게 폭언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안 그러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면서 세상을 등진 모친을 떠올리며 회한을 털어놓았다. 눈시울이 붉어진 이 지사는 “7남매에 인생을 바친 어머니이신데 저희 형님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해 어머니에게 불 지른다 협박했고, 어머니는 보통의 여성으로 견디기 어려운 폭언도 들었고, 심지어 어머니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져 제가 참기 어려워서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에 공직자를 그만두는 것도 각오한 상태였는데, 한 10년 지났고 저도 그사이에 많이 성숙했다”며 “어머니·형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그런 참혹한 현장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픈 이야기를 했다”면서 “언젠가는 전후 과정을 소상히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