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리노(RINO)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첫해인 2013년 10월 공화당의 내분이 극심했다.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 케어) 폐기와 연방 정부의 셧다운 등을 연계시키는 전략에 실패한 공화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가 거셌다. 강경파 보수 단체 ‘티파티’는 다음 해 하원 중간선거의 공화당 경선에서 온건파들을 제거하려는 ‘리노(RINO·Republican In Name Only) 사냥’을 개시했다. 민주당과의 협상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 수십 명을 ‘리노’로 낙인 찍고 낙선 운동 대상에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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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란 ‘이름만 공화당원’이란 뜻으로 민주당 정책을 지지하는 공화당 온건파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주홍글씨’다. 리노로 찍히면 선거 지원 기부금이 급격히 줄어들고 중진 상원의원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하기도 한다. 리노는 코뿔소(rhinoceros)와 비슷하게 발음돼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와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1912년 공화당 노선을 둘러싼 논쟁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당시 대통령 등을 겨냥해 “not really Republican(진정한 공화당원이 아님)”이라고 공격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공화당 온건파를 겨냥하는 용어로 ‘미투(Me-too) 공화당원’ ‘뻐꾸기’ 등이 쓰이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최근 오하이오주 유세에서 자신의 탄핵에 찬성한 앤서니 곤살레스 하원의원을 겨냥해 ‘리노’라고 몰아붙였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그와 맞붙을 자신의 전 보좌관 맥스 밀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성 ‘문빠’들이 비슷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뒤 당내 초선 의원 5명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성 추문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강경한 친문 당원들의 ‘문자 폭탄’과 협박성 발언 때문에 며칠 만에 꼬리를 내렸다. 당내 쓴소리를 ‘배신자’로 몰아 공격하면 표현의 자유를 흔들고 소신 정치를 발붙이지 못하게 한다. 당내의 낙인 찍기는 결국 민심에서 멀어져 국민의 심판을 자초하는 길로 가게 할 뿐이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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