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주요 은행들의 신용대출 증가세가 평소에 비해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해 빚을 내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가 줄어들고 7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확대 적용을 앞두고 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등 돈줄을 조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신용대출 잔액은 139조 294억 원으로 전월보다 5,382억 원 증가했다. 잔액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 등의 기업공개(IPO)가 몰려 있던 지난 4월 사상 최대인 6조 8,401억 원이나 불어났다. 5월에는 전월보다 3조 7,367억 원 줄었다. 지난달에는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금융 감독 당국이 은행에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 월간 증가 폭 상한액 2조 원에는 크게 못 미쳤다. 카카오뱅크의 신용대출 잔액도 16조 4,014억 원으로 495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용대출 잔액 증가세가 주춤한 것은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은 5월 말 1조 5,570억 달러에서 6월 말 1조 4,270억 달러로 약 1,300억 달러(147조 4,400억 원)가 증발했다. 가격이 끝을 알 수 없게 떨어지니 빚을 내서 투자하는 사람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굵직한 공모주 청약이 없었던 것도 주된 이유다. 공모주 청약이 있으면 투자자들은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거액의 증거금을 넣고 이에 따라 신용대출 잔액도 급증한다.
은행이 금융 당국의 DSR 대출 규제에 맞춰 우대금리를 축소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4일부터 5개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0.1~0.5%포인트 축소했다. 신한은행도 5월부터 3,000만 원 초과 마이너스 통장 고객에 대해 약정 기간 동안 또는 만기 3개월 전까지 한도 사용률이 5% 미만이면 연장이나 재약정 시 한도를 최대 20%까지, 한도 사용률 10% 미만이면 10%까지 감액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둔화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잔액은 485조 7,600억 원으로 전월보다 6,517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증가 폭은 올 들어 가장 적었다. 주담대는 △1월 2조 5,830억 원 △2월 3조 7,579억 원 △3월 3조 4,238억 원 △4월 7,056억 원 △5월 1조 2,344억 원 증가하더니 지난달에는 증가 폭이 전달에 비해 반토막 났다. 6월이 부동산 시장의 계절적 비수기인 탓으로 풀이된다.
반면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자금은 급증했다. 언제든 빼서 쓸 수 있는 요구불예금 잔액은 641조 5,351억 원으로 전월보다 19조 6,905억 원 불어났다. 증가 폭은 2월(29조 276억 원)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