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공모주 대어(大魚)로 꼽히는 카카오뱅크·크래프톤·카카오페이의 일반 청약이 ‘7말 8초(7월 말 8월 초)’에 집중되면서 사상 유례없는 ‘청약 위크’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크래프톤이 공모가 고평가 논란 속에 증권 신고서를 다시 작성하면서 상장 일정이 3주가량 뒤로 밀리는 바람에 대형 공모주의 청약 일정이 촘촘히 밀집됐다. 오는 8월 초 크래프톤과 카카오페이의 잇단 청약 시행으로 100조 원 이상의 자금이 한꺼번에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국내 증권사·은행의 전산망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이달 26~27일 이틀간 일반 공모주 청약을 받는다. 카카오뱅크의 희망 공모가 범위는 3만 3,000~3만 9,000원이며 공모가 기준 최대 시가총액은 18조 5,200억 원에 이른다. 카카오뱅크의 청약이 끝난 직후 8월 첫째 주에는 또 다른 조 단위급 공모주 대어의 청약이 진행된다. 크래프톤과 카카오페이는 각각 8월 2~3일, 4~5일에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청약을 받는다. 크래프톤의 공모가 희망 범위는 40만~49만 8,000원, 카카오페이는 6만 3,000~9만 6,000원이다. 이들의 희망 공모가 상단 기준 시가총액은 크래프톤 24조 3,500억 원, 카카오페이 12조 5,500억 원이다. 이들의 코스피 시장 상장 예정일은 카카오뱅크 8월 5일, 크래프톤 8월 10일, 카카오페이 8월 12일이다.
통상 대형 공모주는 흥행을 고려해 청약 일정이 맞물리지 않도록 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초대형 공모주들의 청약이 2주 새 집중된 것은 크래프톤이 증권 신고서를 다시 제출하게 되면서 상장 일정이 꼬였기 때문이다. 애초 크래프톤은 이달 14~15일 청약을 받기로 계획했지만 공모가 부풀리기 논란 속에 금융감독원이 정정 신고를 요구하면서 공모가와 상장 일정을 다시 짜게 됐다.
이에 8월 첫째 주에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100조 원을 훌쩍 넘는 자금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년 전 SK바이오팜의 상장부터 ‘공모주는 낮은 리스크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지면서 공모 시장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실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뿐 아니라 카카오게임즈(58조 5,000억 원)·하이브(58조 4,000억 원)·SK바이오사이언스(63조 6,000억 원) 등 최근 대형 공모주들은 50조 원이 넘는 증거금을 수집하며 시중 자금을 쓸어 모았다. 물론 현재 공모주 시장의 열기가 한풀 꺾인 상태이지만 크래프톤이 여러 증권사의 중복 청약이 가능한 마지막 종목이라는 점, 크래프톤·카카오페이의 기업가치가 앞선 대어들의 가치를 크게 웃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종목에 몰릴 증거금 규모가 100조 원을 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증권사의 주식발행시장(ECM)본부 관계자는 “국내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가 과거보다 다소 주춤해졌지만 크래프톤은 시장의 관심이 뜨거운 종목인 만큼 흥행 가능성을 높게 본다”고 말했다.
더욱이 카카오페이가 국내 기업공개(IPO) 역사상 처음으로 100% 균등 배정 방식의 청약에 나서면서 투자자 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페이의 최소 청약 단위는 20주로, 96만 원만 있으면 누구나 똑같은 수의 공모주를 받을 수 있다. 중복 청약이 불가능해지면서 청약 증거금 자체는 크래프톤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만 젊은 층 등 소액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부모·자녀 등 가족 계좌를 총동원한 참여가 늘어나면서 증권사의 거래 트래픽이 폭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 인해 8월 초 국내 금융기관의 전산망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이 낸 증거금은 청약 마감일로부터 2거래일 뒤에 돌려받을 수 있다. 크래프톤의 청약(8월 3일 마감)에 참가한 투자자들은 카카오페이의 청약 마감일인(8월 5일)에야 남은 증거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다음 달 5일 크래프톤 투자자들이 환불받은 자금을 인출해 카카오페이의 청약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국내 증권사와 은행 전산망이 북새통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5일은 카카오뱅크의 상장 당일이라는 점에서 몰려든 투자자들로 증권사 거래 시스템은 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대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앞서 지난 4월 역대 최대 증거금(80조 9,000억 원)을 모았던 SKIET는 전산망 이용 급증에 청약 당일 일부 증권사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접속 장애를 빚었고 환불 당일에는 계좌 이체 오류가 속출해 투자자들이 불편을 겪은 전례가 있다. 또 다른 증권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 증거금 규모보다 청약에 참여하는 계좌 수가 증권사 전산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며 “SKIET 청약 당시 자금 이체 장애가 빚어진 것처럼 8월 초 투자자의 불편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