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54만명 vs 31만명...대출난민 셈법부터 달라

[7일부터 법정 최고금리 20%로]

불법 사금융 내몰리는 저신용자

학계-정부 추정인원 무려 23만명差

금리 인상땐 대출절벽 더 가팔라져

서민 힘들게하는 '정책 역설' 우려





7일부터 법정 최고 금리가 24%에서 20%로 낮아진다. 문재인 정부의 포용 금융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대거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금융 당국도 ‘안전망대출II’ ‘햇살론15’ 등 여러 안전장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최고 금리 인하로 제도권 대부업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이가 31만 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추산과 달리 ‘대출 절벽’에 부닥치는 이가 54만 명을 넘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더욱이 올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더 높아지면 대부업체나 카드회사들이 신용 등 대출 조건을 더 깐깐하게 심사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을 위한다는 최고 금리 인하 탓에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른바 ‘정책의 역설’이 심화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가 처음 최고 금리를 인하했던 2018년 이후 대부업 이용자 수는 반 토막났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247만 3,000명에 달했던 대부업 이용자 수는 지난해 기준 130만 9,000명까지 줄었다. 3년간 감소 폭이 47.1%(116만 4,000명)에 달한다. 정부의 전망이 낙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의 연구 결과는 정부 추정과는 온도차가 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2018년 27.9%였던 최고 금리가 20%까지 인하될 경우 최소 65만 명의 저신용자가 시장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도 2018년 ‘포용적 금융과 최고금리 규제의 역설’ 논문을 통해 최고 금리를 24%에서 20%로 내리면 54만 명이 제도권 대부업에서 대출 기회를 갖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정반대의 조사 결과도 있다. 금융감독원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불법 사금융 이용자 수는 41만 명으로 되레 전년(51만 8,000명)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다만 이는 표본조사라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당시 금융 당국은 이를 포용 금융의 성과라고 포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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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최근 상황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이 가시면서 이미 시장금리가 오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내년 초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서고 2023년 기준금리를 올리면 금리 상승 폭은 더 가팔라진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공개 발언을 한 바 있다. 쉽게 말해 대부업 시장에서마저 소외받는 이들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시장금리가 오르면 자연스레 대부업체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고, 이는 다시 대부업의 공급 감소로 이어진다”며 “최고 금리 인하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악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정 최고 금리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법으로 최고 금리를 못 박지 않고 있다. 영국만 4개월 이하의 단기금융 시장에서 월이율 규제를 한다. 싱가포르도 영국과 마찬가지다. 미국도 연방 정부 차원에서 금리 상한선을 두지 않고 있다.

김대규 서울디지털대 법무행정학과 교수는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에서도 우리와 같은 보편적인 법정 최고 금리 제도를 일찍이 폐기했다”며 “불법 사금융 피해가 사회문제인 일본은 우리가 따라해야 할 게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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