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디지텍고등학교 1층 강의실에 4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용산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사고를 높이기 위해 마련한 특별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은 특히 인공지능 개발자를 꿈꾸는 인공지능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로봇’ 주제의 강의가 열려 흥미를 높였다.
강의를 맡은 영화철학자 김숙 박사(예술철학)는 인간을 뛰어넘는 인공지능 로봇의 의미에 초점을 둬 열띤 강의를 펼쳤다. 김 박사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정도가 어떤 계절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생들은 “봄이요”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김 박사는 “여러분이 느끼는 것처럼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꽃을 피우며 개발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은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기 때문”이라며 인공지능 기술의 연구 체계의 변화를 설명했다.
인공지능 로봇의 개발 초기인 1950년대에는 상징적 추론으로 로봇이 인간의 사고를 따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2와 3을 더하면 5라는 기호의 상징으로 수학의 답을 추론하듯이 언어의 상징을 추론하면 로봇도 인간처럼 언어를 해석하고 사고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연구에 진척이 없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줄고 지원이 끊기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의 혹독한 시기가 왔다. 연구자들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탑다운(Top down, 하향식) 방식으로 진행했던 연구 체계를 바텀업(Bottom up, 상향식) 방식으로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다. 즉 그 동안 인공지능 기계를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완벽한 프로그램 개발에 초점을 둬 연구를 진행했다면 해결하기 쉬운 현실적이고 세부적인 과제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연구의 변화를 준 것. 이 같은 연구 패러다임 변화는 영상처리, 음성인식, 자동번역, 자율주행 등 인공지능 기술의 부분적 성과를 가져왔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정보기술의 발달로 축적된 어마어마한 정보로 개발의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김 박사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넥스트 렘브란트’처럼 기계가 화가의 화풍을 모방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렘브란트 미술관, 네덜란드 과학자가 공동으로 추진한 프로젝트로 인공지능이 렘브람트의 작품 300점 이상을 분석해 렘브란트의 화풍을 똑같이 재현한 그림을 만든 것이다.
김 작가는 “우리는 인공지능이 그린 램브란트의 그림 같은 기술의 산물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 뒤에는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크고 작은 노동을 한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있다” 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을 배제한 인공지능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인공지능 개발자를 꿈꾸는 여러분들이 이 점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용산도서관이 마련한 김 박사의 ‘로봇으로 철학하기’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원격 강의 등 비대면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디지텍고 1학년 김동희 군은 “인공지능의 철학적인 요소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돼 유익하고 흥미로웠다”고 강의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송창용 디지텍고 국어 교사는 “개발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인공지능의 윤리적·철학적인 측면에 대한 사고를 높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고인돌 2.0은 올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청소년들의 인문학의 사고를 높이기 위한 강연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