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때로는 '자기기만'이 정신세계를 구원한다

■[책꽂이]착각의 쓸모

샹커 베단텀·빌 메슬러 지음, 반니 펴냄





1980년대 후반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 ‘사랑의 교회’ 사건이 있었다. 한 사기꾼이 여성인 척 하며 남성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애정의 증표로 사랑의 교회에 돈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어떤 남성들은 사기꾼과 장기간 편지를 교환하며 사랑에 빠졌고 전 재산을 사랑의 교회에 보내기도 했다. 훗날 사기꾼이 구속돼 재판을 받을 때도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약, 술, 고독에서 벗어나거나 자살충동을 억제할 수 있었다며 사기꾼을 옹호했다. 이들 피해자의 행동을 보며, 일반적으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기만을 한계까지 밀어붙임으로서 결국 불행해지는 길을 택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신간 ‘착각의 쓸모’의 두 저자들은 자기기만에 대한 이런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에게 과학적 진실에 따라 천국이나 환생은 없으니 헛된 믿음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 저자들은 반문한다. 진실을 알린 결과로 그들에게 희망과 편안함을 앗아간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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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자기기만과 이야기를 정신적으로 활용하는 개체가 진화론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성공했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기만에 빠지는 시스템을 탑재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사례를 들어 자기기만의 개념을 살핀 후 인간의 특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예를 들면 진심과 상관없이 전하는 의례적인 말도 일종의 자기기만이지만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유대를 형성하며, 어떠한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면 인간관계가 모두 무너질 것이다. 조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의 어린 시절 ‘벚나무 일화’는 날조된 얘기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바로잡는데 효과적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국가·사회로 확대하면, 국가 정체성과 목적의식, 인간의 존엄성 같은 가치를 고양하기 위한 각종 환상과 왜곡, 자기기만은 의로운 일에 목숨까지 바치게 한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면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이나 전혀 모르는 타인을 구하고 대신 목숨을 잃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의 가능성을 의식해서인지 저자들은 책 곳곳에서 스스로가 합리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가정,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자기기만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지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1만8,000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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