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을 타진해왔던 마켓컬리가 노선을 바꿔 한국 증시에 상장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9일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는 2,254억 원 규모의 시리즈F 투자 유치를 완료하고 기업공개(IPO)는 한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죠. 컬리 측은 “마켓컬리를 이용한 고객들과 같이 성장해온 생산자, 상품 공급자 등 컬리 생태계 참여자와 함께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마켓컬리가 미국 상장 대신 한국에 상장하더라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컬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인 밀레니엄 매니지먼트와 CJ대한통운이 신규 투자자로 참여한 이번 시리즈F 투자에서 2조5,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지난해 시리즈E 투자 당시 9,000억 원 수준에서 1년여 만에 2.6배 커진 수치입니다. 지난해 9,53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 마켓컬리는 분명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입증받았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미국 상장을 기대하기에는 기업가치 규모가 작았고, 앞으로의 성장성을 담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韓 택한 마켓컬리, 쉽지 않은 해결 과제들
문제는 눈을 돌려 한국에서 상장하더라도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들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김슬아 대표의 경영권 방어 이슈가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김 대표가 보유한 컬리의 지분율은 6.67%에 불과합니다.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이 훨씬 많아 상장 후 경영권이 쉽기 흔들릴 수 있는 거죠. 만약 미국 상장을 그대로 추진했다면 쿠팡처럼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 제도를 통해 김 대표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쿠팡의 경우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쿠팡Inc.(쿠팡 모회사) 지분율은 10.2%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 제도에 따라 76.7%의 의결권을 보장받을 수 있었죠. 이번 2,254억 원의 시리즈F 투자 때문에 김슬아 대표의 지분율은 더 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 상장 후 김 대표가 다른 투자자들의 경영 간섭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우려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치열한 신선식품 시장과 후발주자들의 성장
후발주자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한국 증시 상장 후 마켓컬리의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이 미국 상장을 통해 조달한 대규모 자금으로 신선식품 전용 물류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하며 ‘로켓프레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고, 네이버도 CJ대한통운과 손잡고 다음 달 경기도 용인시에 신선식품 전용 보관에 특화된 콜드체인 풀필먼트 센터를 열 예정입니다. 새벽배송 업체 중 유일하게 ‘알짜경영’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오아이스마켓 또한 최근 경기도 성남시에 제2 물류센터를 오픈한 데 이어 관계사인 ‘실크로드’를 통해 이달 중 경기도 의왕시에, 내년에는 울산광역시에 추가 물류센터를 열 계획입니다. 마켓컬리의 신선식품 새벽배송 경쟁력을 평가하기에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거죠.
이뿐만 아니라 마켓컬리가 프리미엄 신선식품의 온라인 배송을 선도한다는 인식도 최근 들어 다소 줄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마켓컬리는 서비스 초창기 ‘프리미엄은 오프라인에서, 가성비는 온라인에서’라는 공식을 깨고 온라인에서도 질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하지만 최근 마켓컬리가 ‘100원 딜’ 행사를 하고 온라인 최저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온라인에서는 가성비’라는 기존 공식으로 되돌아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사이 다른 업체들이 마켓컬리가 지켜오던 프리미엄 자리를 노렸죠. 대표적으로 현대백화점이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부터 온라인 식품몰 ‘현대식품관 투홈’을 통해 수도권에서 프리미엄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5월 새벽 배송 서비스 ‘새벽 투홈’ 매출이 지난해 론칭 대비 183.8% 증가했습니다.
이밖에 ‘극신선’을 추구했던 마켓컬리의 차별적 요소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켓컬리는 제품의 신선도를 위해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고 직접 상품을 생산지에서 바로 물류센터로 이동시켜 배송하기 때문에 신선식품 판매 기한이 업계 대비 무척 짧은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홈플러스 같은 기존 오프라인 업체를 비롯해 네이버, 위메프 등 온라인 플랫폼들까지 잇달아 현지에서 바로 제품을 배송하는 ‘산지직송’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마켓컬리의 차별적 요소가 줄어들게 됐죠.
비식품으로 몸집 키우는 마켓컬리
그 때문일까요? 요즘 마켓컬리는 신선식품 외에도 가전제품이나 호텔 숙박권 등 비식품 상품 판매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화장품이나 주방용품 등으로 조금씩 상품 카테고리를 확대해온 마켓컬리는 지난달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대형가전들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지난 6일부터는 아예 인터파크를 신규 호텔 상품 공급사로 선정해 여행 상품을 판매하기로 했죠. 마켓컬리에서 비식품 상품의 비중은 지난해 20%에서 올해 25%까지 커졌습니다. 마켓컬리 측은 “고객들의 쇼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상장을 앞두고 외형 확장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김슬아 대표는 한국 증시 상장 계획을 밝히면서 “생산자들과는 상생 협력에 힘쓰고, 기술 투자와 인재 유치로 고객 가치를 높여 장보기 시장의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상장 준비 기간에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림을 고려할 때 마켓컬리는 이르면 내년 초에나 상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마켓컬리는 경쟁력 약화라는 한계를 뚫고 성공적으로 상장해 새벽배송 창시자로서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백주원의 리셀(Resell)’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유통 업계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쏙쏙 재정리해 보여드리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