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국정농담] 팬데믹에 민주노총은 보이고 靑기모란이 안 보인다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변이바이러스에 확진자 사상 ‘최다’…4차 대유행

경제까지 잡으려다 실패...김부겸 "국민께 죄송"

민주노총 시위도 논란...文, 에둘러 "단호한 조치"

정부 "집회 확진자 0", 기모란 방역기획관도 구설

김어준 방송 나오다 靑 입성 후 공개 행보 드물어

존재감 없으면 '자리' 신설한 임명권자에도 부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연합뉴스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연합뉴스




코로나19가 델타 변이바이러스 확산으로 하루 확진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고 있다. 7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려던 정부도 입장을 180도 바꿔 수도권 방역 지침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3일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 도심 집회를 강행하며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의 방역 주도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지난 4월 임명한 기모란 방역기획관도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임명 당시보다 방역 상황이 훨씬 악화됐는데도 여전히 존재감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기 기획관 등 핵심 관료들이 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적극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 기획관이 뚜렷한 역할을 해야만 그의 자리를 신설한 임명권자, 문 대통령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5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예방접종 계획, 코로나19 현황 등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5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예방접종 계획, 코로나19 현황 등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확진자 사상 ‘최다’…4차 대유행 본격화

지난달까지만 해도 300∼700명대에 머물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델타 변이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이달 들어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6일 하루 확진자 수가 1,212명으로 폭증하더니 7일에는 1,275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 전에는 3차 대유행이 정점을 찍었던 지난해 12월25일 1,240명이 최다였다. 이틀 연속 1,200명을 넘은 것으로 처음이었다. 8일과 9일에는 신규 확진자 수가 1,316명, 1,378명으로 더 늘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8일 브리핑에서 최악의 상황에 치달을 경우 이달 말까지 2,140명의 하루 확진자가 쏟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청장은 “민간 전문가와 합동으로 수학적 모델링을 이용해 확진자 발생 전망을 추정한 결과 7월 말 환자 수는 현 수준이 유지되는 경우에 1,400명 정도”라며 “현 상황이 악화할 시에는 2,140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밝혔다. 정 청장은 6월10일에만 해도 “전 국민의 25% 이상이 백신 접종을 마치는 동시에 현재와 같은 방역수칙을 유지하는 경우 7월 중순 이후부터는 확진자 발생이 더 큰 폭으로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달 만에 방역당국의 예측치가 땅에서 하늘까지 치솟은 셈이다.

정 청장은 이날 “현 상황을 4차 유행의 진입 단계로 판단하고 있다”며 “델타 변이바이러스가 8월에는 ‘우점화(어떤 종이 영역을 넓히는 현상)’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이어 “방역 상황을 안정적으로 통제하지 못해 당국자로서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지금의 유행을 빠르게 꺾고 사회 전체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단합된 멈춤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국무총리. /연합뉴스김부겸 국무총리. /연합뉴스


김부겸 “국민께 죄송”…이철희 “지적 겸허히 수용”

확진자가 갑자기 폭증하자 국민들 만큼 정부도 당황했다. 특히 정부가 최근까지도 백신 접종 초과 달성, 집단 면역 조기 달성 등에 대한 기대감을 앞세워 자화자찬을 이어왔던 점 때문에 비판 여론이 즉각 확산됐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7일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1년 반 동안 마스크를 쓴 국민들이 너무 지쳐 계셨고 서민 경제 회복 같은 정책적 목표도 있었다”며 “백신 접종도 생각보다 순조로와 7월부터 거리두기를 개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돼 국민들에게 정말 정부 당국자로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힘드시지만 조금 더 견뎌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철희 수석도 8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급증 원인에 안일한 방역당국의 대응도 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자 “그런 지적은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 수석은 “저희로서는 코로나19로 경제적 고통이 장기화된 자영업자 분들의 힘든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며 “일반 국민들도 오랫동안 방역수칙에 피로감을 느끼고 여름 휴가, 추석이 임박했다는 우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른 한쪽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며 “집단 면역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해 국민들께 다시 방역수칙을 지키고 이겨내자는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위중해지자 이달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려고 했던 정부는 거꾸로 수도권 방역 지침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강화했다. 김 총리는 지난 9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거리두기 4단계 안을 12일부터 2주간 실시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오는 1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참석하는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 소집을 긴급 지시했다.

지난 3일 오후 종로 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3일 오후 종로 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확진자 0’ 민주노총 집회 강행 논란…文, 구체적 대상 없이 “단호한 조치”

이처럼 방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이달 3일 강행된 8,000여명 규모의 민주노총 집회는 비난해 8월15일 보수단체 집회와 비교되며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민주노총은 애초 서울 여의도에서 집회를 개최하려다가 경찰이 차벽으로 봉쇄하자 장소를 기습적으로 종로 일대로 바꿨다. 이들은 장마 속에서도 종로 3가 차도를 점거한 채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중대재해 근절 대책 시행 등을 요구했다. 경찰은 집회를 주도·기획한 사람 등 6명을 입건하고 12명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여야 정치권은 민주노총을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5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엄정한 법적 집행이 필요하다”고 비판했고,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강력 대응을 지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도 입을 뗐다. 문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고위험시설을 집중 점검하고 강화된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위반시 즉시 영업을 정지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며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 등 방역 지침을 위반하는 집단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한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을 향해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 같은 기본 수칙의 준수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새겨 달라”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7일에도 청와대에서 수도권 방역강화회의를 주재하고 “방역지침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강력하게 적용하겠다”며 “20∼30대가 많이 이용하는 시설에 대한 선제검사를 실시하고 검사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익명 검사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야권은 그러나 문 대통령이 민주노총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에 대해 7일 기자들과 만나 "그 전에 민노총(민주노총) 집회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의 발언은) 그런(민주노총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8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비판 여론을 두고 “지지 세력이니 봐 줬다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8일 중간브리핑 자료를 내고 “현재까지 (참가자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없다”며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이 민주노총에 있는 양 발언하는 정치인, 일부 언론들은 최종 결과에 기초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도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민주노총 집회가 최근 대규모 감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민주노총 집회 관련 확진자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연합뉴스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 /연합뉴스


이 와중 눈에 안 띄는 기모란…靑 “내부 회의는 매일 참석”

방역이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유독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도마에 올랐다. 당장 청와대와 정부에 왜 사태의 심각성을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확진자가 급증한 이후에도 그가 무언가를 책임지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문도 제기됐다.

서울경제 취재 결과에 따르면 기 기획관이 청와대 행사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린 건 지난 6월7일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가 마지막이었다. 불과 한 달 전이지만 당시 회의 분위기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문 대통령은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우리의 방역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데 발언을 집중했다. 문 대통령은 “백신 접종률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국민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백신 접종 예약 열풍이 분다” “우리나라는 백신 접종에서도 세계적인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 “K-방역의 성공에 이어 백신 접종의 성공까지 이뤄 국민의 자부심이 될 수 있다” 등 방역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기 기획관은 이 자리에서 정은경 청장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기 기획관은 이달 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참석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7일 수도권 방역강화회의 참석 여부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기 기획관의 외부 활동도 알려진 사례가 극히 드물다. 언론에 보도된 기 기획관 참석 행사는 5월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백신·치료제 특별위원회 제2차 회의, 6월8일 전국보건소장협의회 임원진 간담회 정도다. 이 중 6월8일 간담회는 코로나19로 격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부산 간호직 공무원 사건을 계기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기 기획관의 존재감이 너무 미미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부가 똥볼을 차 놓고 국민더러 '원스트라이크 아웃'한다고 협박하는 정부의 적반하장식 방역 대책에 화가 난다”며 “정 청장, 기 기획관은 그 자리에 왜 있느냐”고 질타했다. 신인규 국민의힘 신임 부대변인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 속에서도 경제와 방역 사이에서 우왕좌왕한 혼선 과정에 기 기획관의 판단이 개입된 것은 아닌가”라며 “민주노총의 시위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정부를 보면서 지난해 광복절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됐다던 기 기획관은 어떠한 생각으로, 어떠한 입장 개진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서울경제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기 기획관이 매일 오전 대통령 주재 티타임(비공개 내부회의)에는 참석해 방역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어준 방송서 “백신 안 급하다” 했지만…文 부담 덜려면 존재감 보여야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였던 기 기획관은 재보궐 선거 직후인 4월16일 인사를 통해 청와대에 발을 들였다. 문 대통령은 백신 부족 사태로 악화된 여론을 감안해 사회정책비서관이 기존에 담당했던 방역 정책을 기 기획관이 전담하라는 뜻에서 자리 자체를 새로 만들어 줬다. 문 대통령은 4월21일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기 기획관 임명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기 기획관은 임명 직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그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50회 이상 출연하는 등 정치적으로 편향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또 백신과 방역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내려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기 기획관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해 2월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중국에서 온 한국인에 의해 2차·3차 감염이 일어났지 중국에서 온 중국인에 의해 감염이 일어난 환자가 없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에 반대했다. 같은 해 5월20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을 직접 전한 것을 두고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인 김어준씨가 “연말까지 백신이 나올 수 있느냐”고 묻자 “어렵다”고 단언했다. 11월20일에는 같은 방송에서 “한국은 환자 발생 수준으로 봤을 때 (백신이) 그렇게 급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화이자라는 회사의 마케팅에 우리가 넘어갈 이유는 없다"고 하자 “그렇다”고 동의했다. 확진자 수 증가 원인에 대해서도 “8·15(보수단체 집회)발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12월10일에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모더나 백신을 언급하며 “만약 3개가 동시에 우리 앞에 놓여있다면 화이자나 모더나를 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 기획관이 지금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미약한 존재감으로만 일관한다면 논란을 딛고 핵심 임무를 맡긴 문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방역 정책을 전담시키겠다고 자리까지 마련했는데 지금과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것 자체만으로도 ‘기 기획관이 와서 나아진 게 무엇이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 기획관이 지금부터라도 백신 접종 국면을 전환하고 획기적인 방역 대책를 제시하는 모습을 더 주도적으로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도 방역 사안 만큼은 ‘문 대통령이 인정한 전문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고 싶을 수 있다. 정치인 출신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목소리를 내는 이철희 정무수석과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아닌, 진짜 전문가 말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