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디지털세, 대비가 필요하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국가별 법인세율 부담 변화에 맞춰

기업들 투자·공급망 전략 수립 시급

정부도 외자 유치 정책 재점검하고

조세분쟁 대비 전문가 역량 강화해야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지난 9·10일(현지 시간) 이틀 동안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출구 전략을 중심으로 오는 10월에 열릴 G20 정상회의에 앞서 핵심 의제에 대한 사전 논의가 이뤄졌다. 백신, 기후변화, 첨단 기술, 글로벌 공급망 등 주요 의제가 다뤄졌지만 특히 주목할 사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디지털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G20은 지난 2012년부터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행위에 따른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BEP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디지털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기업 활동에서 법인세 과세의 근거가 되는 고정 사업장의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기업의 이윤 창출 활동과 이에 대한 과세권을 지닌 관할국의 연계가 모호해졌다. 특히 구글과 같은 디지털 공룡 기업에 대한 과세 문제가 ‘BEPS’ 논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OECD와 G20은 다국적기업의 세원 잠식을 통한 조세회피 방지 대책 이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016년 포괄적 이행체계(IF)를 출범시켰다. IF에서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고려한 새로운 국제조세 체제의 원칙과 방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됐다. ‘디지털세’로 통칭되는 새로운 형태의 세금은 ‘기업이 소재하는 곳에서 과세한다’는 100여년간 지속돼온 국제법인세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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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세 논의와 별개로 2018년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세’ 도입이 추진되기 시작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보복관세 부과로 대응하면서 디지털세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올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극복과 경제 재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5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위해 미국이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을 통한 세수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디지털세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달 1일 OECD·G20 IF 제12차 총회에서 130개국은 연 200억 유로 연결 매출액과 1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거두는 다국적기업에 대해 매출 발생국에 과세권을 배분(필라1)하고 연결 매출액 7억 5,000만 유로 이상의 다국적기업에 대해 최소 15%의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도입(필라2)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필라1에는 적용 대상 기업과 과세 연계점뿐만 아니라 배분량, 매출 귀속 기준, 사업 구분, 조세 확실성, 일방주의적 조치, 이행 계획의 구체화 등도 포함돼 있다. 필라2에는 최저한세율과 적용 대상 기업 외에도 이행, GloBE 규칙(소득 산입 규칙과 비용 공제 부인 규칙), 원천지국 과세 규칙, 실효세율 계산 등이 포함돼 있다.

최저한세율 확정 문제를 비롯해 기업의 납세 협력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 등 10월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합의해야 할 사안들이 많이 남아 있다.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등 일부 국가의 반발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이 강력하게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세 합의안이 예정대로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세의 국제 규범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은 아픈 대목이다. 단기적으로는 지금까지 합의된 디지털세로 인한 한국 기업의 부담 증가와 세수 감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기준으로 디지털세 적용 대상 기업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두 곳 정도지만 2030년부터 연결 매출액 규모를 100억 유로로 낮출 경우 대상 기업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미국의 주장 때문에 적용 대상이 정보기술(IT) 다국적기업에서 전 업종 모든 다국적기업으로 확대됐고 디지털 서비스세는 폐지하기 때문에 제조업에 강점이 있는 한국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의 국가별 법인세율 부담에 실질적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따른 기업의 투자와 공급망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법인세율 이외 제도와 규제 요소가 외국 기업의 투자 결정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관련 제도를 면밀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또한 강제적 중재 제도 도입에 대비해 전문가 역량을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 특히 디지털 글로벌 기업들의 정보공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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