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공공재건축 역행·전셋값 폭등에…文정부 첫 '규제 철회' [재건축 실거주 백지화]

野 "세입자 피해 본다" 반대에도

정부, 주거정비 개정법 강행했지만

실거주 규제하며 재건축 시행땐

분양권 못얻는 집주인 반대 불보듯

전문가 "부작용만 키웠다" 비판

지난달 22일 서울 불암산에서 바라본 노원구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지난달 22일 서울 불암산에서 바라본 노원구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정부 여당이 ‘재건축 단지 2년 실거주 의무’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은 해당 조항이 2·4 대책을 통해 발표한 ‘대규모 공공재건축’ 정책에 역행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에 살지 않던 소유자는 규제 적용 시 분양권을 받을 수 없고 재건축에 반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서울 강남 일대 등 상당수 재건축 단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실거주 이외에는 집을 사기 어려운 점 등 규제가 겹겹이 쌓여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당정의 이 같은 ‘갈지자’ 행보와 관련해 지난 1년여간 잘못된 신호를 보내 전세가가 급등하는 등 부작용만 커졌다고 비판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6·17 대책에 따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 개정법’을 지난해 9월 발의했다. 법안은 △투기과열지구에서 시행하는 재건축 사업은 2년 이상 실거주해야 분양권 부여 △시도지사가 안전진단 기관을 선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원래 재건축이나 재개발 같은 정비 사업은 그 지역에 사는 분들이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사업”이라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재건축 아파트가 투자의 대상으로 바뀌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국토부의 입장은 8개월 만에 뒤집혔다. 정부가 83만 6,000가구를 공급하고 그 중 57만 3,000가구를 도심에 내놓는 내용의 2·4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행자로 직접 나서 공공정비(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실거주 규제’가 공공재건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실거주 규제를 적용한 채 재건축을 시행할 경우 투기과열지구 내 주택에 실거주하지 않는 소유자는 분양권을 얻을 수 없어 반대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올해 연초 공급 대책 때문에 국토부 입장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법안이 발의된 직후부터 ‘2년 실거주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유권 침해일 뿐 아니라 세입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토위 법안 소위에서 “서울의 은마아파트라든지 오래되고 누추한 아파트는 말씀하신 대로 60% 가까이 월세 사는 사람들”이라며 “만약 이 법을 강행하게 되면 주인들이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세입자에게) 나가라 그러고 직접 거주한다고 한 달에 한두 번 왔다 갔다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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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앞서 무리하게 밀어붙인 ‘임대차 3법’의 계약갱신청구권이 실거주 규제와 상충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여당은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하면서 세입자가 기존 2년에 2년을 더해 총 4년을 거주할 수 있게 하되 집주인이 실거주하면 계약 갱신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예외 조항을 뒀다. 그러나 실거주 규제를 도입할 경우 집주인이 실거주 함에 따라 기존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또 토지거래허가제 등 강한 규제들이 다수 존재해 굳이 겹겹이 규제를 쌓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도 원인이 됐다. 현재 서울 강남 일대와 용산구 등 재건축 추진 단지가 몰린 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어 실거주 목적에서만 집을 살 수 있다. 이와 함께 주택담보대출 시 6개월 내 전입 의무 등 대출 요건도 까다로워 비거주 목적에서 신규 매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서울 등 부동산 불안 지역에서는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시점을 안전진단 이후로 앞당기기로 한 점도 원인으로 풀이된다.

정부 여당은 이와 함께 ‘안전진단 기관’ 선정 권한을 시장·구청장·군수에게 남겨두기로 했다. 이는 내년 대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개별 시군구가 안전진단을 통해 재건축에 시동을 걸어도 시도지사 선에서 가로막힐 경우 지역 민심이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민주당 부동산특위가 서울 지역 구청장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정순균 강남구청장, 김수영 양천구청장, 오승록 노원구청장, 채현일 영등포구청장 등은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여당의 ‘실거주 규제’ 혼선이 시장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실거주 규제로 인한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말은 터트려놓고 실제로 법 통과가 안 돼 시장에서는 혼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임대차 3법 때문에 전세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실거주 2년을 의무화하니 더욱 오르는 것”이라며 “세금이 많이 나오는 아파트는 재건축 분양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실거주 의무 영향이 더욱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인엽 기자·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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