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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랑종' 반종 감독이 말하는 나홍진, 그리고 호러의 神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




데뷔작 ‘셔터’로 태국 호러 영화계를 흔든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어느 순간 호러에 따분함을 느껴 약 10년간 로맨스 장르에 집중해왔다. 비슷한 분위기에 비슷한 전개로 굳어지는 호러 영화들을 보는 것조차도 싫었던 그는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영화 ‘곡성’을 보고 단숨에 매료됐다. 그 영화를 쓰고 만든 나홍진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주며 내민 손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10년의 지루함을 털어내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홍진 감독이 프로듀싱을 맡고 반종 감독이 연출한 ‘랑종’은 태국 산골마을,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그린 작품이다.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인 ‘랑종’은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랑종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님의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직감하고,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밀착 취재한다. 그러면서 밍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나 프로듀서는 ‘랑종’을 ‘곡성’의 일광(황정민) 캐릭터의 전사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지 않은 것은 원치 않게 굳어지고 있는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기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신 한국과는 다른 정서를 가진 곳에서 반종 감독의 신선한 표현력을 빌리는 것을 택했다. 반종 감독이 나 프로듀서의 색다른 연출을 보고 다시 호러 영화에 마음을 열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은 부담이 줄어든 상태예요. 제가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고 부담감을 느꼈던 시기는 영화를 촬영할 때죠. 한국의 천재 감독님이자 나의 아이돌인 나홍진 프로듀서가 지켜보고 있다는 부담으로 인해 퍼펙트한 신을 찍기 위해 노력했어요. 또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나 프로듀서가 직접 태국에 올 수 없게 되면서 제가 모든 일의 디테일을 준비해야 하는 게 많아져 힘들기도 했고요.”

나 프로듀서의 인연은 6년 전 태국 방콕의 문화센터에서 시작됐다. 반종 감독은 그곳에서 열린 예술제에서 한국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게 돼 나 프로듀서의 ‘추격자’를 선정했다. 유명 감독인 나 프로듀서가 그곳까지 자리하지 못할 것 같아 논평만 진행했는데, 감동스럽게도 나 프로듀서는 직접 참석했다. 그는 자신이 연출했던 작품들을 모두 DVD로 선물하며 존경을 표했고, 그 인연은 4년이 지나 나 프로듀서와의 협업으로 이어졌다.

“나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압박감’이나 ‘중압감’이에요. 나 프로듀서의 작품이 모두 걸작이기 때문에 협업할 수 있는 기회에 중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좋은 분이었고, 제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항상 의견을 교류할 수 있었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랑종’은 ‘곡성’과는 비슷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르다. ‘곡성’이 여러 비유와 상징들로 가득 찼다면, ‘랑종’은 대차게 한 방향으로만 밀고 나간다는 느낌이 강하다. 처참하고 끔찍한 서사들이 결말까지 이어진다. 반종 감독이 이렇게 직관적인 연출로 ‘인간의 악(惡)’과 ‘원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남기고자 했다. 영화에서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관객이 직접 결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


작품의 배경이 되는 태국 이산 지역은 습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가득하다. 반종 감독은 나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2년간 태국의 무속신앙에 대해 직접 취재하면서 이산 지역을 선택하게 됐다. 가장 신비로운 곳이라고 느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의 분위기가 영화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태국 무속 신앙에 대해 리서치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무속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금전적인 목적이나, 누군가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무속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았죠. 예를 들어 한국 돈으로 1,000원 정도만 받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무속인이 있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나 조사할 때 본 바로는 질병이 실제로 나았어요.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나 싶었어요. 그들은 그곳에 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정신과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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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은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해 리얼리티를 배가시켰다. 나 프로듀서가 원안에서부터 제안한 형식이지만 ‘적합한 방식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고, 태국의 무속 신앙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파워풀한 방식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종 감독은 카메라 감독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귀띔하지 않아 깜짝 놀라는 반응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들어갈 수 있게 의도했다. 배우들에게는 가이드라인만 주고 정확한 대사를 주문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분명해요. 리얼리티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이죠. 실제에 가까운 연기를 할 수 있게 연출했어요. 초반 장례식 장면에서 밍이 노인에게 욕하는 장면도 가이드라인만 주고 촬영한 거예요. 중요한 대사만 포괄적으로 되어 있었고, 배우들에게 자율적으로 애드리브 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


리얼리티가 넘쳐날수록 수위 높은 장면들은 더 자극적으로 비춰졌다. 근친상간, 존속살해, 식인, 동물 학대 등 불쾌감을 남기는 소재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나 프로듀서는 수위를 낮추자고 제안했고, 그때마다 두 사람은 많은 논의를 거쳤다. 결국 반종 감독의 의견대로 진행됐지만, 그는 꼭 필요한 장치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스토리에 꼭 관련된 화면들만 넣었어요. 촬영하면서 굉장히 조심했고, 선정적이거나 위험한 장면은 CCTV 카메라를 통하거나 어둡고 흐리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이 내용의 메시지 전달에 꼭 필요한 장면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악귀에 빙의한 밍의 연기를 탁월하게 소화해 낸 나릴야는 반종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해 낸 배우. 나릴야는 신내림을 거부하면서 점점 이상 증세가 심각해지고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영화 중간에 몸무게 10kg를 감량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배우와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가 의견을 나누고 협업해서 나온 결과라고.

“배우가 이런 빙의나 이상 증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에 유명한 이상 증세 빙의 관련 다큐를 많이 봤어요. 저와 함께 무속인들이 빙의된 태국 프로그램을 보고 논의하고 협의했고요. 나 프로듀서와 영화 ‘부산행’ ‘곡성’에 참여한 유명 안무가의 조언까지 합쳐져서 좋은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어요.”

'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랑종'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 사진=쇼박스 제공


반종 감독이 생각하는 요즘 트렌드의 호러 영화는 공포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 그런 요소들을 통해 유니크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중에서도 태국 호러 영화가 아시아 호러계 중심에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다양한 신앙이 섞여있는 태국 사람들의 습성과 생활방식 때문이다.

“사전 조사를 하면서 많이 느꼈는데 각 지방의 마을마다 믿는 신들이 다르고 여러 귀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어요. 그런데 좀 더 지나가면 교회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중국 절도 있고요. 그렇다 보니 태국 사람들은 귀신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죠. 어렸을 때부터 귀신 얘기를 자주 듣고, 술을 마시면서도 귀신 얘기 하는 걸 좋아할 정도예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호러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태국에서 호러 영화계 거장으로 불리는 반종 감독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데뷔작 ‘셔터’와 ‘샴’은 현재까지도 호러 영화 TOP 순위에 들 정도. 그는 ‘랑종’ 개봉을 앞두고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 예상한 것보다 뜨거워 긴장되고 흥분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유명 아이돌들도 ‘셔터’와 ‘샴’을 봤다고 해주더라고요. 특별한 반응을 원하는 것은 없었지만, 뜨거운 반응이라 감사해요.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제가 만든 영화가 해외에서 개봉하는 게 처음이라 뜻깊어요. 또 이렇게 유명한 나 프로듀서와 협업한 작품이니 많은 관객이 재미있게 관람해 주셨으면 해요. 특히 결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추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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