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

[단독] K금융의 굴욕…한국씨티銀 인수땐 亞매물 우선권 준다

印·러시아 등 亞太지역 13곳서

소비자금융 매각 나선 씨티그룹

韓 난항겪자 SC銀에 패키지 제안

"경직된 인력구조·규제가 부른

국내 은행산업 현주소" 지적





글로벌 씨티그룹이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에 사실상 동남아와 한국 씨티은행을 패키지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씨티은행을 인수해주면 동남아 인수자 선정 시 우선권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씨티그룹이 매각 중인 아시아태평양 지역 13개국 씨티은행 가운데 한국이 가장 난항을 겪자 내놓은 고육책이다. 금융계에서는 낮은 성장성과 경직된 인력 구조, 규제 환경이 빚은 한국 은행 산업의 단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씨티그룹은 한국을 포함해 동남아·호주·인도·중국·러시아 등 13개국에서 소비자금융(소매금융) 사업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SC은행과 한국 씨티은행 인수를 놓고 동남아 인수와 연계해 협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씨티은행을 적극적으로 인수하려는 후보가 없는 반면 동남아 쪽은 사려는 후보들이 많아서 생각해 낸 카드”라고 설명했다.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부문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사모펀드(PEF) 등을 포함에 20곳 정도에 이르지만 사업부 전체 인수나 고용 승계를 원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씨티은행은 소비자금융그룹 내 9개 사업부에서 일반 개인 여신, 신용카드 사업, 자산관리(WM)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소비자금융그룹 통매각을 선호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용카드와 WM 사업 등 일부만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 여신 등 매각되지 않는 사업은 신규 가입을 받지 않으면서 자연 소멸되도록 할 계획이다. 과거 HSBC가 소매금융 사업을 접을 때 택한 방식이다.

동남아에서는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이 대상이다. 씨티는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신용카드와 펀드 상품을 기반으로 고액 자산자 고객을 확보해왔다. 베트남은 지난 1994년 진출해 호찌민과 하노이에 지점을 열었고, 인도네시아는 1968년부터 6개 도시에 10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업 이자 수익 지표인 순이자마진(MIN)은 이들 국가가 한국의 3~4배인 3~4% 수준으로 높다. 동남아 씨티 인수 후보로는 SC은행과 싱가포르개발은행(DBS), 일본 미쓰비시금융그룹이 거론된다.



SC은행은 영국계이지만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는 씨티와 함께 소매금융을 하는 유일한 외국계 은행이다. 국내에서는 199개 점포를 두고 36조 원의 개인 고객 자산을 굴리고 있으며 리테일(소매금융) 부문은 1분기 말 기준 1,514억 원의 순이자 손익을 올렸다. SC은행의 수수료 손익은 지난해 426억 원에서 올해 566억 원까지 늘었는데, 리테일에서 48%(99억원) 급증했다. 씨티그룹이 SC은행에 한국 인수시 동남아 인수에 혜택을 주는 제안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SC은행은 씨티그룹의 제안에 신중한 입장이다. 국내에서 개인 고객을 상대하는 유일한 외국계 은행으로 씨티은행의 WM 관련 고객에 관심은 있지만, 씨티은행의 인력 전체를 수용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씨티그룹은 한국 씨티은행의 인력 일부는 희망퇴직(명예퇴직)으로 줄이고 기존에 중소기업 여신 영업을 담당했던 인력 일부를 기업 금융에 남기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희망퇴직자에게 5~7년치 연봉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매각의 성격이 자산양수도인지 영업양수도인지도 성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업에서 자산양수도는 고객 자산이 핵심이고 영업양수도는 영업권을 포함한다. 영업권은 은행업 인가(라이선스)와 영업 조직을 주로 말한다. 판례에서 영업 조직은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되 획일적인 기준은 없다.

이번 매각에서 씨티은행은 18조 원에 달하는 개인 고객 자산과 관련 상품을 담당하는 일부 인력을 넘기되 은행업 인가나 전산은 넘기지 않는다. 신규로 은행업 인가를 받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기존 시중은행이 아닌 2금융권이나 인터넷은행 사업자는 인수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된다.

자산양수도인 경우 금융 감독 당국의 인가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영업양수도는 인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다르다. 금융 당국은 최근 이번 거래의 성격에 대해 논의했으나 최종 거래 조건이 나온 후 유권해석을 하기로 결론 내렸다.

매각가의 기준인 기업가치 평가에서도 양측은 다르다. 자산양수도는 넘어가는 고객 자산과 관련 점포 등 유형자산, 관련 인력에 대한 급여 등을 단순히 더해 산정한다. 반면 영업양수도는 일종의 법인이 넘어가는 것이어서 순자산에 은행업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적용하는데 경우에 따라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소매금융 통매각을 기준으로 3,000억 ~7,000억 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세원 박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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