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공유지 약탈'이 부른 불평등…기본소득으로 풀 수 있을까

■공유지의 약탈

가이 스탠딩 지음, 창비 펴냄





‘공유지’(commons)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자연적·물리적 환경을 포함해 우리가 공유하는 공적 부(富)를 가리킨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허와 저작권, 사회 기반 시설, 인터넷과 방송 전파 같은 무형 자산까지 포괄한다. 이 개념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1968년 생물학자 개럿 하딘이 발표한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논문에서 하딘은 모든 이용자들이 공유지에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챙기려 하기 때문에 공유지는 고갈될 운명이라고 내다봤고, 이는 공공재의 민영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가이 스탠딩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원(SOAS) 교수는 신간 ‘공유지의 약탈’에서 하딘이 논문 제목을 ‘관리되지 않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정했어야 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고 전한다. 공유지는 관리에 따라 그 가치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데도 하딘이 이 점을 간과하고 지나친 일반화로 저평가했다는 의미다. 스탠딩은 이 같은 저평가에 기반해 거대 자본이 자연부터 사회 인프라, 문화 전통과 개인정보까지 우리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공유지를 약탈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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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공유지가 어떻게 약탈 당했고 불평등을 야기했는지 조목조목 따진다. 정부가 민간 자본을 유치해 세운 병원 재단은 건강보험인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질을 떨어트렸고, 우편·철도·노인돌봄 등의 공공 서비스도 민영화 이후 질이 급락했다고 지적한다. 개인 정보는 미국 빅 테크 기업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페이스북·구글 등 몇몇 플랫폼이 개인 정보를 토대로 특정 견해가 웹 화면을 통해 공유되도록 통제할 수 있는 시대다. 구글은 구글 애널리틱스를 이용해 2012년 미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의 캠페인을 타깃 유권자 집단에 전달함으로써 선거 승리를 뒷받침했다고 자랑했다.

저자는 책에서 모든 공유지의 상업적 개발·이용에 부담금을 거둬 기금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저자가 말하는 부담금은 탄소세, 금융거래세, 법·금융 인프라의 사용에 따른 부담금, 주파수 이용 부담금 등을 의미하며, 기금의 모델로는 노르웨이 등이 운용하는 국부펀드를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으로 모두에게 배당금을 주자는 저자의 주장은 궁극적으로 기본소득 모델과 일치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충남 보령시 장고도의 마을 공동체가 해삼 양식장을 공동 운영하며 30년 가까이 이윤을 배당 형태로 동등하게 배분한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는 기본소득론을 둘러싼 논쟁에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3만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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