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대신 기술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개선된 ‘종합심사낙찰제’가 여전히 ‘로또식 당첨’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력이 아닌 입찰 금액에 따라 낙찰이 결정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공공 공사 부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15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종심제 최대 규모 사업인 ‘당진기지 1단계 1~4 저장 탱크 건설공사’의 시공 계획 심사 대상자로 두산중공업을 지난 9일 선정했다. 이 사업은 추정 가격 6,771억 원 규모로 부가세를 더하면 7,448억 원에 달한다.
입찰에는 총 7개 사가 참여했는데 종합 심사 결과 당락을 가른 것은 기술력이 아닌 ‘입찰 금액’이었다. 두산중공업은 입찰 가격에서 상·하위 일정 비율을 제외한 나머지의 평균 가격으로 산출하는 ‘균형 가격’에 가장 근접한 입찰가를 써내 입찰 금액 점수 만점(50점)을 받으면서 수주에 유력한 고지를 점했다.
이 공사는 입찰에 참가할 수 있는 시공 실적을 보유한 건설사가 전국에 12개뿐일 정도로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초고가 공공 수주 사업이다. 하지만 기술평가는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종합 심사에서 입찰에 참여한 7개 사는 수행 능력 점수에서 모두 만점(50점)을 받았다. 당락을 가른 것은 온전히 입찰 금액 점수다. 단순히 입찰 가격을 바탕으로 정하는 균형 가격에 근접한 가격을 써냈는지 여부만으로 낙찰자가 정해지는 방식이어서 결국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해 조달청이 발주한 정부 세종 신청사 건립 사업(1,487억 원) 등 종심제를 통한 다른 사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기존 ‘최저가낙찰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종심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기술평가는 사실상 사라지고 예상하기 어려운 균형 가격에 근접해야 하는 ‘운찰제’로 전락하고 있다는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예정가 대비 낙찰률도 80%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예전의 최저가 경쟁 때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입찰 가격 중심의 경쟁이 이어지면 건설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건설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52조 1,000억 원으로 2009년(58조 5,000억 원)에 이어 최대 규모로 늘어난 공공 부문 건설 사업이 단순한 ‘나눠 먹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 업계에서는 고난도 공사만이라도 기술 경쟁력에 기반한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글로벌 건설 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입찰 제도의 선진화가 뒤따라야 한다”며 “공공 사업이 기술력 경연의 장이 되도록 모든 공공 공사에서 ‘창의적 대안 제시’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