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냉방 수요까지 늘면서 전력예비율이 올여름 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14일에는 전력예비율이 10.1%선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발전기 고장 등 돌발 사고로 인한 대정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력예비율을 1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일 전후에는 뜨거운 공기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는 ‘열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달 말 전력예비율이 4.2%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들은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었던 2011년의 공포가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사태까지 온 데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념에 사로잡힌 탈(脫)원전 정책을 고집하느라 멀쩡한 원자력발전소를 멈춰 세우고 예정됐던 원전 건설까지 중단하니 원활한 전력 수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현재 원전 24기 가운데 8기는 정비 중이고 지난해 4월 준공된 신한울 1호기는 최근에야 어렵사리 운영 허가를 받았다. 신한울 1호기는 내년 3월 말에나 가동될 수 있다. 정부는 시운전 중인 석탄발전과 LNG발전을 긴급 투입하고 전기 수요를 줄인 기업에 보상하겠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 정도로 블랙아웃을 막기는 어렵다.
게다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철강·석유화학 등 우리 제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탄소국경세는 EU 역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수입품에 물리는 세금이다. 원전은 탄소 배출이 없는 대표적인 에너지원인데도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인 탓에 수출 주력 산업의 발목마저 잡히게 된 셈이다. 당장 폭염으로 블랙아웃이라도 발생하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 받고 산업 현장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적인 탄소 중립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다. 오기의 탈원전 정치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의 에너지 믹스 전략으로 갈아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