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보상금을 줄 테니 나가라고 해서 다른 동네 집값을 알아봤더니 보상금으로는 어림도 없더라고요. 반평생 넘게 여기서 살았는데 이 나이 먹고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한 공원에서 만난 김 모(89) 씨는 풍납토성 토지 보상에 대해 묻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오랫동안 고향처럼 살던 곳에서 억지로 이삿짐을 싸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서울시에서 받는 보상금으로는 서울 안에서 집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을 복원·정비하기 위해 추진 중인 토지보상사업이 주민 반발에 부딪혀 장기화하고 있다. 당초 서울시는 2020년까지 토지 보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올해 6월까지 실제 토지 보상은 목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최근 수년간 서울 집값이 큰 폭으로 올라 보상금만으로는 이주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만으로는 토지 보상에 한계가 있는 만큼 개발권양도제(TDR) 도입과 같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역사 보존과 주민재산권 보호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풍납토성 인근의 보상 대상 1,542필지 중 올해 6월까지 보상이 완료된 필지는 749필지로 전체의 4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2015년 12월 서울시는 향후 5년간 5,137억 원을 들여 토지 보상을 조기에 완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해 1월 문화재청이 ‘현재 속도라면 풍납토성 보상에 40년 넘게 걸릴 것’이라며 보상 대상 토지를 축소한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계획이었다. 이후 서울시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투입한 금액은 총 4,649억 원. 당초 계획했던 금액의 90%를 썼지만 실제 보상은 필지 기준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는 셈이다. 풍납토성에서 백제 유구가 처음 출토된 1990년대 이후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토지 보상에 쓴 돈은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토지 보상 작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보상금을 둘러싼 서울시와 주민의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25년간 풍납동에 거주했다는 김 모(70) 씨는 “보상금으로는 서울의 다른 동네로 이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이곳 노인들은 다들 집 한 채가 유일한 노후 대책인데 어디로 가라는 건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보상금은 입지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단독주택의 경우 지난해 3.3㎡(평)당 2,500만~2,700만 원의 보상금이 산정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시지가 기준으로 감정평가액을 산정하다 보니 주민들은 금액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울시로서는 토지보상법에 규정된 보상 금액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풍납토성 복원 사업이 속도를 내려면 정부나 지자체 예산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도시계획 수단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 출신의 채미옥 대구대 부동산학과 초빙교수는 “지금 같은 보상 방식으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복원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재개발·재건축 허용 시 사업자에게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가로 현금으로 기부 채납을 받아 토지 보상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도시 주변의 문화재 보존을 위해 1980년대부터 해당 지역 내 토지 소유주가 개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대신, 다른 지역의 개발사업자에게 개발권을 팔 수 있는 ‘개발권양도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