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개최를 하루 앞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 식당이나 주점의 영업시간 제한이 풀려 밤 11시에도 영화 ‘시네마 천국’의 테마 음악이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었다. 제법 쌀쌀한 밤 공기에도 카페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시민들은 연주가 끝나자 박수로 화답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도 베네치아 거리의 조명등은 꺼지지 않았다. 유럽 젊은이들은 산마르코광장 계단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거나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달 28일부터 ‘화이트존’에서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해제하자 시민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기준으로 전국 20개 주를 레드·오렌지·옐로·화이트 등 4개 등급으로 나눠 관리한다. 베네치아가 속한 베네토주는 지난달 7일부터 위험 등급이 가장 낮은 화이트존으로 분류돼 음식점과 주점·영화관 등의 영업 제한이 모두 풀렸다.
실제 베네치아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2~3명에 불과해 마스크를 꼼꼼히 착용하고 현지 취재에 나선 한국 기자들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수상 택시 기사는 기자에게 “한국에서 백신을 맞고 왔느냐”며 “그러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권했다.
이탈리아가 방역을 완화한 것은 높은 백신 접종률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감한 것과 관련이 깊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18일 기준으로 이탈리아 국민 중 1회라도 백신을 맞은 사람의 비율은 60.12%로 세계 4위다. 한때 4만 명을 웃돌던 이탈리아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달 중순부터 1,000명 안팎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섣불리 방역의 고삐를 푼 뒤 유로 2020 우승과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유로 대회 기간에 로마·밀라노·피렌체·볼로냐·나폴리 등의 주요 광장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고 시민들은 수천 명씩 쏟아져 나와 거리 응원에 열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탈리아의 일일 확진자 수는 12일(887명)을 기점으로 13일(1,530명)부터 16일(2,895명)까지 폭증했다.
특히 대거 거리 응원에 나선 젊은 층의 백신 접종률이 낮아 신규 확진자는 당분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국립고등보건연구소(ISS)에 따르면 백신 미접종률이 60대와 70대는 각각 18.7%, 12.6%에 그치지만 20대는 52.47%, 30대는 50.75%에 달한다.
오는 23일 도쿄 올림픽 개막을 앞둔 한국의 백신 접종 상황도 이탈리아와 비슷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은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의 백신 미접종률은 60대와 70대가 10%대 수준인 데 비해 18~29세는 88.4%, 30대는 79.4%에 달했다. /베네치아=박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