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발(發)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에 카카오페이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4분기로 늦춰졌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이 공모주를 받기 위해 ‘백지수표’까지 제시하는 등 시장의 반응은 좋았지만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 한 방에 자금 조달 계획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금융 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모가 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해외에서도 통하는 공모가 산정 기준을 문제 삼아 기업 자금 조달에 영향을 끼친 것은 결과적으로 과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페이의 정정된 증권신고서 제출이 오는 9월 말~10월 초 사이 이뤄질 것으로 분석된다. 카카오페이는 당초 다음 달 4~5일 일반 청약을 마지막으로 IPO 공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청하며 공모 일정이 전면 중단됐다.
카카오페이의 공모 일정은 반기 실적을 포함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게 되면서 늦춰지게 됐다. 당초 카카오페이는 1분기 재무제표를 기반으로 공모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135일 룰’에 따라 반기 실적을 넣어야 해외 투자자 유치가 가능해졌다. 135일 룰이란 해외 투자 설명서에 포함된 재무제표 작성 시점으로부터 135일 내에 청약 대금 납입 등 상장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규정이다. 지난 19일까지 새로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 다음 달 공모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금융 당국이 16일 급작스럽게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을 함에 따라 청약 일정이 10월 이후로 넘어가게 됐다. 증권신고서를 정정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자금 조달 일정이 늦춰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은 최근 공모주 시장에 뭉칫돈이 쏟아지면서 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변동성이 큰 공모주 특성상 투자자 보호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업은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겼다. 카카오페이는 100% 신주 모집으로 공모가 하단 기준 1조 710억 원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공모 자금이 전액 회사에 유입되는 구조다. 카카오페이는 당장 올해만 타법인 지분 확보에 300억 원, 운영자금에 135억 원을 쓸 계획이었지만 공모 일정 연기로 투자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서는 공모가 할인이 결국 외국 투자가만 배불린다는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해외 기관들이 가격과 관계없이 공모주를 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상황에서 자본력이 풍부한 외국 투자가들은 예상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쓸어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페이가 해외 기관을 상대로 연 투자 설명회에 싱가포르투자청(GIC) 등 해외 큰 손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희망 공모가조차 쓰지 않은 백지수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공모가가 희망 범위를 넘겨 결정되더라도 청약에 참여하겠다는 의미다.
한 IB 관계자는 “해외 기관 대상 청약 유치 금액(가예약)이 공모가 최상단 기준 기업가치인 12조 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IB 관계자는 “자금을 제때 조달하지 못하게 되면서 (자금 조달의) 불투명성뿐 아니라 하반기에 목표한 사업 계획 차질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